"신문단가·판매지역 규제는 월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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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신문고시의 내용이 신문사와 광고주, 신문사와 지국간의 사계약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이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날 뿐더러 경영간섭을 통해 정부가 비판적인 신문사를 옥죄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에 이어 오는 25일께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통과를 앞두고 신문고시의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허행량(許倖亮.매체경제학)세종대 교수는 "현재 주요 신문의 지면수가 군소.지방신문에 비해 많은 것은 광고주의 선호도에 따른 광고 게재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이는 매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고 말했다. 또 "정부가 신문사와 광고주간의 거래내용을 신문고시로 규제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위배된다" 고 강조했다.

許교수는 신문사가 신문 공급부수.단가.판매지역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한 고시내용은 정부의 월권으로, 시장 관여를 통한 신문사 옥죄기라고 비판했다.

신문사가 지국에 판매량을 늘리도록 강요해선 안된다는 조항 역시 신문대금 1만원 중 60% 전후인 지국의 몫(지대.배달료+판촉비)에 판촉비가 들어 있음에도 앞으로 판촉을 하지 말라는 식이어서 앞뒤가 안맞는 규제라는 것이다.

신문협회 관계자는 "신문사가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잠재)광고주에 불리한 기사를 써서는 안된다는 고시내용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것" 이라며 "정치.사회적 파장을 감안해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를 광고주에 불리하다고 싣지 않는다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 고 반문했다.

신문고시 내용 중 특히 논란을 빚는 부분은 신문사와 지국간 사계약에 과연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許교수는 "고시 내용대로 시행된다면 독자를 위해 신문의 질 관리에 신경 써야 할 신문사들이 앞으로 너무 많은 권한을 갖게 되는 지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며 "이렇게 되면 신문의 질이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된다" 고 우려했다.

신문사와 독점계약을 하고도 눈치를 보면서 3~4개 신문을 취급하고 있는 지국의 경우 신문고시 내용대로 하면 10개 안팎의 신문을 다룰 수 있는 등 권한이 비대해진다. 이에 따라 지국이 계약을 어기는 등 신문사와 불공정 거래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경우 지국의 전단 광고물 수입이 월 수백만원에 이르는 등 서울.지방에 따라 지국의 수입구조가 크게 다른 신문시장의 현실을 무시하고 지국의 지대를 동일하게 한 것도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 신문고시와 이에 따라 제정된 신문협회의 공정경쟁규약을 두고 있지만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사토 요시오(佐藤嘉男)일본프레스센터 전무는 "일본의 신문판매는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며 "신문사가 잘 나가는 신문판매회사에 자사 신문을 팔아달라는 요구와 함께 리베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고 밝혔다. 일본에선 신문 판매에 대한 규제가 없고 자율경쟁을 보장하고 있으며 신문 관련고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신문업의 경품제공 제한 고시' 뿐이다.

김기평 기자, 도쿄〓오대영 특파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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