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 국채 석 달 내리 팔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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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세계 국채 시장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영국·일본 등 선진국 국채는 찬밥 신세다. 반면 신흥시장 국채는 발행량이 확 늘었다. 무엇보다 시장의 신경이 곤두선 부분은 역시 ‘큰손’ 중국의 움직임이다. 중국이 그동안 보유했던 미국 국채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의 국제투자유동성(TIC) 보고서에 따르면 1월 말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8890억 달러다. 한 달 새 58억 달러 줄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석 달째 감소세다. 이강(易綱) 중국 외환관리국장은 최근 “미 국채 거래는 정상적인 투자 행위”라고 말했다. 괜히 넘겨 짚거나 정치적 해석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수익성 면에선 ‘AAA’급 채권의 매력이 떨어졌다. 재정적자 때문이다. 중국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채권을 많이 보유할 이유는 없다. 무디스는 15일 “미국과 영국의 국채 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AA’급인 일본 국채도 해외에서 예전만큼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국채가 꾸준히 발행되는 것은,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는 일본 금융사들이 자국 국채를 사들이기 때문이다. 1월 말 일본계 은행들의 일본 국채 보유액은 126조4000억 엔으로 2008년 하반기보다 50% 늘었다.

선진국 국채의 빈자리는 신흥국 국채가 채우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1~3월 신흥시장 국채 발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늘었다. 1290억 달러어치다. 미국 국채 대비 가산금리(10년물 기준 2.57%포인트)도 최근 2년 내 가장 낮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을 위안화 절상에 대비한 사전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동양종금증권에 따르면 위안화가 절상됐던 2005~2008년 중국 외환보유액 대비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은 42%에서 30%로 줄었다. 위안화 절상(달러 약세)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런 흐름은 최근에도 나타났다. 지난해 7월 43%이던 국채 비중은 12월 37%로 줄었다. 이철희 동양종금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파는 물량은 미국 상업은행들이 모두 사들일 수 있는 수준이어서 시장에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고 평가했다.

현실성은 낮지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국이 미 국채를 ‘경제 전쟁’의 도구로 쓰는 것이다. 중국이 위안화 절상 압력에 대한 반격으로 달러 표시 자산을 팔아 치워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를 대체할 대안이 별로 없다”며 “달러가 흔들리면 가장 피해를 보는 곳은 달러를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국”이라고 말했다. 분위기를 잡는 엄포용은 가능하지만, 금융시장의 파국을 부를 투매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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