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리 "한나라 차떼기당" 한나라 "막 가자는 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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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下)이 이해찬 총리(中)에게 질문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헌재의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결정과 4대 입법안 대치 등으로 갈수록 험악해져 가는 여야 관계에 또 한번 파란이 일고 있다. 28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이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비난 발언 때문에 파행사태를 빚었기 때문이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이 "총리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퇴보한다'고 한 발언을 사과하라"고 요구하자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원을 받은 당인데 어떻게 좋은 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직격탄을 쏘았다. 이어 이 총리는 작심한 듯 "한나라당은 다수의 위력으로 다른 국회의원을 방해하면서 대통령을 탄핵해 헌재에 회부하지 않았느냐"며 사과 요구를 일축했다.

이 총리는 또 '조선.동아는 역사의 반역자'라고 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도 "조선.동아일보는 1974년 유신 때 자유언론을 수호하던 수많은 기자를 집단으로 해고하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복직을 안 시키고 있다. 종합적으로 시대와 역사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도 철회하거나 회복시키지 않은 것은 역사에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한다"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안 의원이 "막 가자는 거냐. 망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하자 이 총리는 "책임질 사안이 없다. 내가 의원 주장에 의해 거취를 결정할 사람이 아니다"고 맞받았다.

이 총리의 초강경 발언이 이어지자 한나라당 의석에선 "정신나간 총리 물러나라" "무슨 망발이냐"는 등의 거친 항의가 터져나왔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차떼기가 사실 아니냐"며 총리를 감싸 회의장이 시끄러워졌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소리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느냐"며 퇴장했다. 안 의원의 질문이 끝나자 한나라당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의사진행 발언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회를 보던 열린우리당 소속 김덕규 국회 부의장은 여야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과정에서 또 한차례 소란이 일었다.

◆"군사정권 때도 이런 폭거 없어"=한나라당은 오전 질문이 끝난 뒤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이 총리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오후에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의총에서 강재섭 의원이 "군사정권 때도 이런 총리는 없었다. 한나라당은 아무리 욕하고 맘대로 짓밟아도 문제없다는 식인데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격앙된 의원들의 발언이 속출했다.

총리 해임건의안을 내자는 제안도 나왔다. 비주류 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현장 대응이 미온적이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문수 의원은 박근혜 당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 면전에서 "골목대장도 이렇게는 안 한다. 당이 매번 실기하고 있다. 지도부가 전열을 정비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대여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덕룡 대표는 지방에 있던 열린우리당 천정배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 총리에게 사과를 권고해 국회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천 대표는 "총리가 생각이 분명하고 사과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결국 대정부질문이 파행을 맞았다. 한나라당은 이 총리의 발언이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적 도발'로 보고 있다. 남경필 부대표는 "이 총리가 개인적으로 얼토당토않은 용꿈을 꾸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정 언론에 각을 세워서 세력을 끌어 모았고 그 힘으로 대통령이 된 것을 배워보려는 것 같은데 개인적 욕심을 위해 국회를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내 중도.보수 그룹인 '안개모(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소속 의원들은 불만을 표시했다. 간사인 안영근 의원은 "과했다.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낫다"며 이 총리의 사과를 주문했다.

김정하.김성탁 기자 <wormhol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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