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일본 교사들을 변화시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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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러 해 전 도쿄(東京)에 갔을 때 에도(江戶)박물관을 찾아보았다. 도쿠가와(德川) 막부시대 거리의 모습, 서민의 생활상.예술.유곽 등 흥미진진한 전시품이 많았는데 가장 나의 관심을 끈 것은 태평양전쟁 중의 도쿄 시민의 생활상과 동원양상, 폭격으로 인한 피해, 그리고 전후의 물자부족으로 인한 극심한 생활고의 모습들이었다.

***과거 속죄하는 양심 세력

관람하면서 일본의 전후세대들은 그 박물관에 와서 폭격 당한 도쿄 거리의 처참한 모습과 엄청난 사상자의 숫자를 보며 그것이 그들의 부모가 군국주의라는 집단 히스테리아에 휩쓸린 대가라는 사실을 인식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보았다.

그때는 몰라서 가보지 못했지만 일본에는 '평화박물관' 이 여러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토(京都)시 리쓰메이칸대 내의 사립 '평화박물관' 은 일본의 15년에 걸친 침략행위와 전시동원체제, 일본 내의 반전세력들의 활동, 그리고 일본군의 식민지와 점령지에서의 야만적 행위들에 대한 자료를 전시해 반전.반군국주의 사상을 고취하려는 선도적인 평화박물관으로 꼽히고 있다.

그외에도 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崎).오사카(大阪).다카마쓰(高松).가와사키(川崎).사카이(堺) 등 일본 여러 도시의 시립박물관들이 전쟁의 참상뿐 아니라 일본의 책임을 밝히는 자료들을 전시해 역사적인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회의 같은 곳에서 일본의 지성인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대부분 일본의 과거에 대해 깊은 수치심을 갖고 있고, 우익의 선동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박해와 테러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같은 과거사 규명과 속죄와 보상을 통한 청산에도 우리 못지 않게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활동을 하는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 도 많이 있다.

위의 시립박물관들이 건립된 것도 많은 경우 일본의 지식인, 특히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제안과 여론형성에 힘입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양심적인 일본인과의 연대를 모색해야 하고, 특히 일본의 중.고교 교사들을 폭넓게 접촉해 그들의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올바른 역사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토록 해야 한다.

교과서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교과서를 가르치는 교사의 인식과 자세는 학생들에게 더욱 큰 영향력을 지닌다.

일본과 한국의 교사들이 만나서 일본의 전쟁문학과 한국의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을 같이 읽고 토론해 본다면 어떨까□ 다음은 영역본에서 중역한 히로시마의 반전주의자 시인 구리하라 사다코의 '깃발' 이다.

마치 아무런 과오도 없었다는 듯이/깃발은 다시/지붕 위에 높이 휘날리며/다시 대낮의 살육(殺戮)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올려다보지 않았고/사람들은 그 깃발의 끝없는 탐욕을 증오하며/그 흉악한 기억상실증에 이를 갈았다.

그 깃발아래서/매일아침/영양실조로 혼미한 정신으로/우리는 노예의 서약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깃발을 흔들며/붉은 띠를 두른 아버지와 오빠들을/전쟁터로 떠나보냈다. /대륙의 성벽 위에 휘날린 후로/깃발은 미친 듯이 제국의 꿈을 꾸었다. /멀리 과달카날로부터/코레기도어의 절벽에 이르는 제국을. /그 깃발은 우리의 아버지와 남편들을/이오지마와 사이판의 동굴로 내몰았고/들짐승처럼 굶겼으며, /그들의 백골을 흩어지게 했다.

아! 흰바탕에 붉은 점의 일장기!/너의 발아래서 행해진 악몽같은 잔혹행위들!/여자와 아이들에게 휘발유를 끼얹고 산채로 태워죽였던/마닐라와 난징(南京)/20세기 최악의 범죄. /그런데도 일장기는 오늘도 뻔뻔스럽게 나부낀다/그 피비린내 나는 기억을/ 잊고. /미풍에 나부끼며 깃발은/또 세계지도를 다시 그리는 꿈을 꾼다. (1952년 6월)

***올바른 역사인식 제고를

다음은 구리하라가 히로히토(裕仁)의 임종소식을 듣고 쓴 '쇼와(昭和)시대가 끝나는 날' 의 마지막 연(聯)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한때의 총사령관은/그의 범죄에 대해 참회를 하지 않았다. /쇼와시대가 끝나는 날/ '대동아전쟁' 은 마침내 끝날 것인가□/아니면 일본은 새로운 전쟁의 준비를 갖추고/전쟁의 문턱에 서 있는가?/43년 전 8월/일본 전국에서 쓰라리게도 울었던 매미소리가/지금 다시/고막을 찢는다.

서지문 고려대 영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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