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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도 '내 몫'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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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일본에서 수백억원대의 부가 수익을 낳은 ‘겨울연가’는 저작권 분쟁에 불을 지폈다.

10월 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KBS.MBC.SBS를 상대로 한 노동쟁의조정신청이 접수됐다. 탤런트.코미디언.성우 등 한국방송연기자노조가 올 6월부터 끌어온 임금협상안 타결을 위해 제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측이 주장하는 인상폭의 차이가 너무 커 노동위도 조정안을 제시할 수 없다며 19일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 김기복 연기자노조 사무총장은 "이대로 대립이 계속되면 파업도 불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출연료를 둘러싼 분쟁이지만, '겨울연가' 후폭풍으로 방송가에 몰아치고 있는 저작권 다툼의 연장이다. 한 프로그램의 '2차 사용'(유선 방송, 비디오.DVD 판매, 해외 수출 등) 수익이 수백억원대로 커져도 방송사만 이득을 본다며 작가.독립제작사에 이어 연기자까지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연기자 "특약을 만들어라"=현행 저작권법은 '특약이 없는 한' 연기자의 권리는 제작자에게 양도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제75조 3항). 하지만 판매 시장이 다양해져 재수익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특약을 맺어서' 연기자에게도 저작권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 요지다. 만약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2차 사용료까지 반영해 기본 출연료를 올려달라는 주장이다.

◆제작사 "우리가 더 잘 팔 수 있다"=외주 프로그램은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지만 대개 계약 단계에서 방송사의 요구에 따라 저작권을 양도한다. 이 때문에 해외 수출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제작사는 주장한다. 방송사가 다큐나 구성물 등의 판매까지 나서기 어렵고, 해외 시장에 맞게 60분 물을 15~30분으로 편집하거나 3개월.6개월 등의 판매 단위로 프로그램을 묶는 일 등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수출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 이런 주장이 계속 제기되자 지난 5월 22일 방송위원회 보증하에 양측이 '공동판매'에 합의, 올 가을 개편 프로그램부터 제작사도 판매권을 얻는 대신 그 수익은 방송사와 나누기로 했다.

◆방송사 "누구 덕인데"="'겨울연가'가 너무 히트한 게 문제다"고 한 방송사의 저작권 담당자는 말했다. 1987년 '서울 뚝배기' 등 인기 드라마 작가들의 집필 거부 사태 이후 지금처럼 저작권 문제로 시끄러운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제작비.방송 장비.제작 인력까지 방송사가 지원한다. 드라마가 실패할 위험도 감수한다. 저작권을 양도받을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나"는 것이 방송 3사의 공통된 주장이다. 지상파 방영 없이 2차 사용 이익이 그만큼이나 발생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법적 책임이냐, 도의적 책임이냐="법적 책임은 없는데도 연기자에게 지상파 재방송료를 주고, 외주사가 맡아야 할 드라마 작가의 저작권료를 대신 지불하는 등 선의로 대응해 왔다"고 방송사는 주장한다. 하지만 톱스타를 제외한 연기자들은 소액의 출연료밖에 못받고, 독립제작사의 재정이 열악한데 방송사가 저작권 수익을 모두 갖는다면 '도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심재주 독립제작사협회 사무총장.김지숙 한국방송작가협회 저작권부 차장). 게다가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슬픈연가' 등 사전 제작.자체 펀딩 드라마가 나오면서 기존의 '투자에 대한 반대 급부' 논리를 내세우기도 어렵게 돼 저작권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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