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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스라엘 관계 1975년 이래 최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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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동예루살렘 라마트 슈로모에 유대인 정착촌 주택 1600가구를 추가로 짓겠다.”(9일, 이스라엘 내무부)

“이스라엘 정부의 결정을 비난한다.”(9일,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

“발표 시점이 부적절했다.”(11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미) 부통령 방문 중에 정착촌 신축을 발표한 것은 (미국에 대한) 모욕이다.”(12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유감스러운 사건이었다.”(14일, 네타냐후 총리)

“(미국에 대한) 모욕인 동시에 중동 평화 노력을 망치는 행위다.”(14일,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

맹방을 자랑해온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가 심상찮다. 최근 바이든 미 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도중 발표된 동예루살렘 유대인 정착촌 건설 계획 때문이다. 마이클 오렌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영사들을 비상 소집해 “현재 양국 관계는 1975년 이래 최악”이라고 말했다고 이스라엘 영자지 예루살렘 포스트는 전했다. 이스라엘은 75년 점령 중이던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 반환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팔레스타인 소년이 12일(현지시간) 예루살렘 동쪽의 팔레스타인 거주지 셰이크 자라 지역에서 벌어진 유대인 정착촌 건설 반대 시위를 지켜보고 있다. [예루살렘 로이터=뉴시스]

◆평화 협상 좌초 위기=바이든은 7일 중동 순방길에 올랐다. 2008년 가자지구 전쟁 이래 전면 중단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을 중재하기 위해서였다.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를 꺼리는 양측을 위해 미국 특사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간접회담 방식을 제안했다. 9일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다음 날 팔레스타인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날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동예루살렘 유대인 정착촌 신축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착촌 문제는 이·팔 평화 협상 재개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혀왔다. 팔레스타인은 당장 “건설 계획을 취소하지 않으면 협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협상 재개는 고사하고 ‘판’ 자체가 깨질 위기에 처했다. 미국은 자국 부통령이 외교적 망신을 당했다고 펄펄 뛰었다.

◆미국의 정치적 노림수?=미국의 격렬한 반응 이면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5일 이스라엘 학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이번 사태를 최대한 이용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교적 결례를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를 최대한 압박해 ‘양보’를 이끌어 내려 한다는 것이다.

동예루살렘 정착촌 건설 계획을 취소시키거나, 또 다른 분쟁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정착촌 건설 동결 조치를 연장시키는 것 등이다. 10개월간의 서안지구 정착촌 건설 동결 조치는 올 9월로 만료된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입장은 아직 유보적이다. 네타냐후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여러 차례 유감을 표시했다. 정착촌 발표는 연립정권 내 정통 유대교 정당인 샤스당 소속 엘리 이샤이 내무장관이 주도한 것으로, 자신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내각에 재발 방지책 강구도 지시했다. 하지만 정착촌 건설 계획 취소 요구에 대해선 가타부타 언급을 않고 있다.

김한별 기자

◆동예루살렘=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점령해 병합한 땅. 이슬람의 3대 성소 중 하나인 알아크사 사원과 유대교 성소인 ‘통곡의 벽’이 함께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 모두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땅’이다. 특히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장래 독립국의 수도로 삼으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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