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박춘석 별세] “미자야” 부르시던 큰아버지 같은 분이셨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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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 차려진 고 박춘석씨의 빈소를 찾은 가요계의 스타. 이미자. [연합뉴스]

“저에게 모든걸 다 베풀어주신 분입니다. 우리 가요계의 어른이신데….”

‘트로트 여왕’의 눈이 촉촉해졌다. 14일 오후 박춘석씨의 빈소를 찾은 가수 이미자(69)씨는 글썽이는 눈으로 “가족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애통해했다. ‘작곡 박춘석, 노래 이미자’는 반 백년 우리 가요사의 히트공식으로 통했다. 고인은 생전에 이씨에게 모두 700여 곡을 선사했다고 한다. 이씨는 “꺾는 음의 미묘한 차이나 무대 매너 하나까지 일일이 가르쳐줬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인과 이씨의 인연은 1965년 KBS 라디오 주제곡 ‘진도아리랑’으로 시작됐다. 이씨의 음악적 재능에 매료된 고인은 소속사를 옮기면서까지 가수 이미자의 히트곡을 쓰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이씨는 “세미 클래식이나 발라드 등을 주로 쓰던 박 선생님이 저 때문에 장르를 바꾸신 걸로 안다”고 말했다.

고인은 평소 이씨를 “미자야”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씨는 “작곡가와 가수 사이가 아니라 큰아버지 같은 분이셨다”며 “자상하면서도 자존심 강했던 예술인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부산 공연을 마치고 새벽 기차로 올라온 직후 스튜디오로 직행해 녹음했던 ‘흑산도 아가씨’가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60년대 중반. 갓 신인 딱지를 뗀 이씨는 “전통가요를 천박하지 않게 소화하는 법을 박 선생님께 배웠다”고 했다. 이씨의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노래는 나의 인생’이란 주제곡을 써준 이도 고인이었다.

이씨는 10여 년 전 고인이 쓰러진 직후 자택에서 마지막 모습을 봤다고 한다. 당시 거실 TV에서 이미자 노래 관련 일본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이씨가 말했다. “저 노래 선생님께서 쓰셨잖아요. 어서 건강해지셔서 곡 새로 쓰셔야죠.” 고인은 “그래 그래” 고개만 두어 번 끄덕였다고 한다. 우리 가요계를 떠받쳤던 박춘석·이미자 콤비의 마지막이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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