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헌재 부정은 헌법 부정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해 "헌재의 결정으로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다"고 말한 것은 크게 잘못됐다.

국회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행정부가 직무를 수행하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것처럼 국회도 헌법에 부합되지 않는 법률을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은 이처럼 국가기관이 위헌적으로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1987년 개정된 헌법에서 도입한 헌법소원 심판을 한국 민주화의 상징적 징표로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헌재가 자신의 기대와 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헌정질서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헌재의 존재로 가장 득을 본 사람이 바로 노 대통령이다. 국회는 지난 3월 12일 '헌법상의 권능'을 행사해 노 대통령을 탄핵소추했다. 찬성 193표, 반대 2표라는 압도적 차이였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국회의 결정이 그토록 절대적이라면 헌재는 국회의 탄핵을 기각하는 대신 군말 없이 수용했어야 했다. 노 대통령 사고방식대로라면 헌재가 국회의 탄핵 결정을 무력화함으로 해서 헌정질서의 혼란이 왔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지금 대통령으로 남아 있는 것이 헌정의 혼란이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이제 와서 "헌재의 결정으로 정치지도자와 정치권 전체의 신뢰가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발언 장소가 국무회의였던 것도 부적절하다. 대통령의 발언은 마치 정부 차원에서 헌재의 결정에 불복, 반발하도록 지시 또는 독려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대통령의 제일의 임무는 취임선서와 같이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여당의 보안법.사학법.과거사법.언론법안의 위헌적 요소 때문에 결국 헌재의 심판대상이 되리라는 전망이 있다. 노 대통령이 이를 대비해 미리 방벽을 쳐둘 생각에서 발언했다면 더욱 문제다. 대통령은 헌법에 명시된 헌법재판권을 위협하기보다 법안들에 담겨 있는 위헌적 요소를 걷어내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