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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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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의 한국 붐인 '한류(韓流)'는 여전히 한창이다. '욘사마' 배용준과 '혼사마' 이병헌 등 한국 배우의 이름이 줄줄 나오고 오늘도 한국 영화는 부지런히 일본에 수출된다.

도쿄(東京)뿐 아니다. 지난 21일 오후 일본 후쿠오카(福岡)시 시민센터인 아크로스 홀에서는 '한류' 강의가 있었다. 8층 강의실은 중.장년 일본 남녀 100여명으로 꽉 찼다. 규슈(九州)대 한국학 센터 소장 마쓰하라(松原孝俊)교수가 강사였다. 턱밑에 그리스인처럼 짧은 흰 수염을 기른 그의 '약장수'식 강의에 청중들은 꽤나 웃었다. 그는 한국에 부정적이던 일본인의 인식이 2004년 대변혁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현상 뒤엔 '겨울 연가'가 있다. 올 상반기 오후 11시대에 방영된 연가의 시청률은 20%. 오후 7시 NHK 뉴스 시청률이 14.6%인 데 비하면 대단하다. 주제가를 담은 CD도 100만장 넘게 팔렸다.

주로 일본 주부 팬을 붙잡았던 '겨울 연가'가 왜 한류의 원천이 됐을까. 이 드라마를 처음 소개한 NHK 방송 오가와 준코(小川純子) PD는 "일본에선 추억으로 사라진 연애와 가족 사랑, 노인공경 전통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억과 사랑의 맛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주목할 점은 "대사를 손봤다"는 그의 말이다.'겨울 연가'의 원래 대사는 20~30대 스타일이다. 일본의 이 세대는 드라마를 안 본다. 그래서 대화를 40대 이후의 감성에 맞게 감칠맛 나고 아름답게 '재창조'했다. 드라마 이름도 일본 감각에 맞춰 '후유(겨울)노 소나타'로 바꿨다. 좀 과장하면 NHK 전파를 탄 '겨울 연가'는 재창조된 일본 드라마다. 그 덕에 80대 할머니가 "오랜만에 멋진 일본어를 접한다"는 편지를 보내고 한.일어 대본을 비교하는 교재가 생길 만큼 성공을 거뒀다.

이런'재창조'가 던지는 의미는 새길 만하다. 우린 '모방을 잘하고 소화해 내는' 일본인을 쩨쩨하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겨울 소나타'에 비친 그 소화력은 가볍게 볼 게 아니다. 한.일 문화교류는 더 활발해질 것이다. 문화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될 것이란 농담도 나온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우리 것을 더 맛깔스럽게 만들어 역수출하는 재주를 부릴 게 틀림없다.'일본이 한국에 푹 빠졌다'는 도취감에 머문다면 우린 한류의 껍데기만 감탄하는 꼴이 된다.'겨울 연가'로 시작된 일본의 한류는 선물만이 아니다. 경각심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