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고백성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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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종철(1947~) '고백성사' 전문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못에 관한 명상'의 연작 중 첫 작품이다. 시인이 가장 겸손하고 부끄러움을 탈 때는 언제일까? 인간은 참회와 속죄를 통해 하느님의 형상을 닮아간다. 빌라도에게 못박혀 죽은 예수의 손바닥이 떠오른다. 이는 천년왕국의 역사에서 대속의 사랑으로 못대가리 하나가 떠오른 최초의 사건이다. 요즘은 이사철이 되어 이사를 가도 벽에 십자가는 많이 걸려 있어도 숭숭 뚫린 못자국이 없으니 어찌 된 일인가.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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