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수출과 구조조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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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1990년대 말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부터 시작된 아시아의 외환위기는 우리나라로 하여금 과거에 겪어 보지 못했던 경제위기에 봉착하게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으로 소위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했다고 자처하면서도 아직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한 국가들과 똑같은 형태의 위기에 직면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전해오는 전염효과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EU국가들도 경기 하강

그런데 최근에는 자본주의의 중심국가들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일본, 그리고 유럽으로부터 전해오는 또 다른 경제불황이 우리에게 전염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우선 미국은 신경제가 가져다준 오랜 호황 사이클의 하강곡선이 연착륙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경착륙으로 이어질지 우리의 가슴을 조이게 하고 있다.

신정부가 시작되면서 희망 섞인 연착륙 가능성이 언급되긴 했지만 미국 통화당국의 연이은 금리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국경제의 뚜렷한 회복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경제의 하강국면 진입과 함께 많은 사람은 유럽경제가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주도해줄 것을 희망해 왔다. 이러한 기대는 지난해 말까지 유로화가 대(對)달러화 강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유로화가 달러화에 대해 약세로 돌아서고, 열두개 유로화 국가들의 산업생산이 감소되고 있으며, 특히 EU의 대표국가인 독일의 경기지수가 크게 하락하면서 유럽경제 주도의 세계경제 성장기대는 매우 어렵게 됐다.

특히 우리에게 가장 큰 걱정을 안겨다 주는 국가는 일본이다. 지난 10년간 침체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해온 일본은 아직도 그 긴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해 영(零)의 수준으로까지 이자율을 인하했지만 수요가 진작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국민총생산(GNP)의 1백20%가 넘는 정부 부채의 누적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출을 늘렸으나 경기는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정부 지출에 의한 경기부양이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마저 일고 있다.

이러한 일본경제의 불황은 이미 우리 경제에 큰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경기침체의 돌파구를 수출에서 찾기 위해 일본은 엔저(低)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곧바로 우리 수출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 효과로 지난 3월 수출이 벌써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투자한 자본을 단시일 내에 유출해 가는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의 금융은 더욱 큰 곤경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경험했던 경제위기가 동남아로부터 전염된 것이라 한다면 다시 다가올지도 모르는 위기는 동북아 또는 자본주의의 중심국으로부터의 전염에 기인한 것이 될 것이다. 불행한 것은 동남아로부터의 전염조차 막을 수 없었던 우리의 경제적 상황이고 보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부터 오는 전염은 더욱 막을 수 없을 것이란 점이다.

그러나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먼저 상황에 따라 유연성 있는 정책목표를 설정해야 하며 그에 알맞는 정책수단을 도입해야 한다.

***부실기업.금융 정리 시급

국내 경기가 침체에 이르면 우리는 먼저 수출을 증가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따라서 엔화가 절하됨에 따라 원화가 절하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아서는 안된다. 정책결정자들은 원화절하가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왜곡된 환율은 외환에 대한 투기를 야기해 외환과 금융시장을 또 다시 불안케 할 것이다.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구조조정이다. 부실기업과 부실금융을 끌어안은 채 해외로부터 오는 파고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지금의 경제침체를 경기부양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정책의 시행에 있어 정치적 고려가 우선시되는 풍토에서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국내적으로는 구조조정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수출증대를 촉진하는 것이 우리가 택해야 할 올바른 정책방향이라 하겠다.

이영선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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