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일회계 서태식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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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현대건설의 지난해 적자 규모가 1999년에 비해 1년새 25배 늘어났다는 감사 결과를 둘러싸고 '부실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현대건설의 회계감사를 맡아온 삼일회계법인 서태식 (사진)회장은 29일 "현대건설의 대내외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해 적자 규모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을 뿐 회계감사는 엄정히 했다" 고 말했다. 徐회장은 "현대건설의 경영상황이 비관적으로 변해 경영실적을 평가하는 데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했다" 고 주장했다.

오는 4월로 창사 30주년을 맞는 삼일은 공인회계사 수가 1천3백명이 넘는 국내 최대 회계법인으로, 삼성전자.현대건설.대한항공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감사를 맡고 있다.

- 현대건설의 99년 감사보고서엔 적자규모가 1천3백억원이었는데 2000년엔 3조원에 육박한다. 이렇게 차이가 많이나는 이유는.

"현대건설의 대내외적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해 부실 반영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 미수채권의 회수가 더욱 희박해졌다고 판단, 전체 채권의 50%를 손실로 반영했다(99년엔 20%만 손실로 계산).

또 대북사업의 수익성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자회사인 현대아산의 적자도 투자 개발비가 아닌 손실로 계산했다. 99년에는 적어도 영업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2000년엔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자연히 보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잣대를 대게 된 것이다. 또 구조조정과정에서 유가증권.주식.부동산 등을 헐값에 판 것도 적자규모를 키우는데 영향을 끼쳤다. "

- 현대건설과 정부측의 반응은 어떠했나.

"29일 오전 현대건설 주주총회가 있었는데, 28일 오후 5시까지도 현대건설측이 감사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며 버텼다.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원측에서는 사전에 대강 감을 잡고 있었다. 예상보다 적자 규모가 큰 것으로 밝혀지자 놀라긴 했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채권단의 의뢰로 현재 영화회계법인에서 현대건설 실사를 하고 있는데, 이번 감사를 '준(準)' 실사 수준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했다. "

- 현대건설의 현 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1조4천억원의 출자전환과 1조5천억원의 신규자금 지원 정도면 일단 올해 안에 재무구조는 정상화할 것으로 본다. 청산가치보다 계속기업가치가 당연히 높다. "

- 대우.현대의 잇따른 부실화로 회계 감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회계법인.기업.정부 모두가 함께 달라져야 한다. 우리 기업에서는 임원이 재무 조작으로 처벌을 받으면 마치 회사를 위해 희생한 '공훈자' 처럼 대접받는다. 그런 문화속에선 기업의 회계가 제대로 될 수 없다.

정부도 회계 기준을 지켜야 한다. 97년부터 4년 동안 은행의 결산 기준이 매해 바뀌었다. 가장 신뢰성이 높아야 하는 은행의 회계마저 그렇게 변덕스럽게 바뀌니 외국인들이 우리 기업의 회계를 못믿는 것이다. 회계법인들도 회계 투명성과 윤리성을 높이기 위한 자정노력이 필요하다. "

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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