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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현대건설 법정관리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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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째깍째깍 소리를 내던 시한폭탄 중 한개가 드디어 터졌다. 현대건설이 3조원의 적자를 내며 시장에 그 추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마치 이런 사태가 올 줄 지난 해 11월에는 전혀 몰랐던 것처럼 겁 없이 국민 돈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려고 하고 있다.

그나마 최소한의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말이다. 더 이상의 신규지원이 없다던 말도, 기업문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간 곳이 없다. 들리는 것은 성난 소액주주의 외침뿐이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의 소리 없는 분노는 어찌할 것인가.

정부는 지난 해부터 지금까지 현대건설 문제를 처리하면서 두가지 큰 잘못을 범했다. 하나는 시기선택의 잘못이고, 다른 하나는 방법선택의 잘못이다. 정부는 지난 해 11월에 이 문제를 끝냈어야 했다. 해결의 방법과 관련해서도 마땅히 그 때 법정관리를 신청해 법원의 판단을 구한 후 필요하다면 출자전환 등 정공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라는 재벌에 대한 본격적인 수술을 시도해야 했다. 그랬다면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현 상황을 그 때 호미(물론 상당히 큰 호미지만)로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혹자는 과거사야 어찌 됐든 지금이라도 정부가 출자전환을 통해 이 문제를 풀기로 했으니 다행이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우선 정부가 기업의 회생여부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우리가 지난 몇 년동안 그토록 정착시키려고 노력해 왔던 시장경제의 원리와는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기업의 회생여부는 일차적으로는 자본시장 참가자에 의해 결정돼야 하고, 그들간에 집단적 합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법원이 관장하는 회사정리절차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 도대체 이들 말고 그 누가 회사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는가.

둘째로 현재와 같이 상황이 악화된 단계에서 법원의 보호 없이 이뤄지는 출자전환이 과연 각종 쟁송에서 자유스러울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도 이미 소송의 가능성이 난무하고 있는데, 정부가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원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추가지원을 결정할 경우 과연 관련 당사자들이 그로 인한 법률적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셋째로 이런 선례가 향후 시장 참가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대우의 부도와 동아건설의 청산 결정은 우리 경제의 고질병이었던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그러나 '국민경제적 차원' 에서 이뤄진 이번 구제책은 시계바늘을 다시 거꾸로 돌리는 부질 없는 행동일 뿐이다.

물론 정부도 최근 들어 한때나마 법정관리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그 방법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 차원에서 몇 가지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첫째, 전문성이 떨어지는 판사에게 이 문제를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판사가 진공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양쪽의 자료를 모두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큰 설득력은 없다.

둘째, 대외신인도의 하락을 걱정하는 의견이 있는 데 자본이 완전 잠식된 기업에 하락할 대외 신인도가 얼마나 더 남아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해외공사의 차질문제나 건설업의 특성 운운 하는 것은 비슷한 상황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동아건설의 예를 가져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도산관련 법제도가 엉망이어서 이용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는데 설사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할 지라도 왜 갑자기 현대건설의 처리와 관련해서만 다른 방식을 이용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설득력 있는 논리가 있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볼 때 현재 선택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빨리 법원으로 가는 것뿐이다. 이럴 때 써 먹으려고 회사정리법을 만들고 판사들에게 국민들이 봉급을 주는 것 아닌가.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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