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중국어 동시통역사 정혜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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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중국어를 중국사람처럼 구사하고, 중국 영화.음식까지 좋아하는 '중국광' (中國狂).

대구시청 정혜정(鄭惠汀.30.여.전문직.사진)씨는 중국어 동시통역사다.

鄭씨는 대구시에 중국 손님이 찾아오면 통역하고, 중국 정부나 자치단체를 오가는 공문과 홍보자료 등을 번역하고 있다.

그는 통역의 엘리트 코스인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을 나왔다.

鄭씨는 통역대학원을 나와 지역에서 활동중인 유일한 통역사다. 지역엔 서울에서 흔한 영어.일어 동시통역사 한사람 없다.

대구는 오는 5월 국제청년회의소대회.컨페더레이션컵경기를 시작으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등 각종 국제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통역은 국제행사의 성패를 가늠할 또하나의 잣대다.

鄭씨를 만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신분을 의식한 듯 처음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나 대화가 시작되자 생각을 또박 또박 밝혔다.

1997년 鄭씨가 대구시 통역을 맡은 이후 지역을 공식 방문한 중국 관료나 경제인은 40여명. 회의석상에서 통역을 한 경우도 있지만 현장을 수행하며 '가이드' 역할까지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국말도 문제지만 산업체.관광지까지 설명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해요. 특히 경제나 문화분야의 전문용어를 전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 그래서 손님이 방문할 기관에 자료를 요청해 궁금한 부분은 묻고 밤새 단어를 찾는다.

그는 사투리가 심한 지역 인사들이 방문하면 긴장한다. "국토가 넓다 보니 사투리가 심합니다. 고령자들은 정도가 더 심해요. "

그는 98년 헤이룽장(黑龍江)성 관료가 대구시를 방문했을 때 80세가 넘은 데다 사투리가 심해 걱정이 태산 같았다고 했다. 다행히 그쪽에서 통역사를 데리고와 걱정은 덜었지만 직접 만나 보니 도저히 통역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중국어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여고 2학년때. 홍콩영화 '영웅본색' 을 보면서 독특한 억양에 이끌려서였다.

경북대 3학년 여름방학때는 베이징(北京)에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4학년때는 1년간 타이완(臺灣)에 머물렀다. 타이완에 도착한 지 일주일만에 한국과 단교(斷交)하는 바람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후엔 외대 통역대학원 시험에 응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그가 전하는 외국어 정복의 비결.

"외국어 공부는 왕도(王道)가 없습니다. 매일 5~10분이라도 거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또 공부한 걸 직접 활용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길가는 외국인을 붙잡고 한마디라도 직접 해봐야 해요. "

鄭씨는 통역사 생활이 말처럼 화려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구는 물론 서울도 통역사 대부분이 대학에 출강하거나 다른 직업을 갖고 있고, 부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는 "웬만한 번역이나 통역은 대구서 가능한데 아직도 상당수가 서울에 의뢰한다" 며 아쉬워했다. 그는 영어 일변도의 공부 풍토에 대해 "영어 외에 다른 나라 언어를 하나쯤 공부하라" 고 조언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그만큼 넓어질 것이란 얘기다.

글=홍권삼.사진=조문규 기자

<정혜정씨는…>

▶1971년 대구 출생

▶ 89년 대구 원화여고 졸

▶ 94년 경북대 중문과 졸

▶ 97년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문학석사.통역사)

▶ 〃 대구시청 외국인투자상담실 근무

▶97년 이후 현재까지 대구를 방문한 중국 칭다오(靑島)시 장워이라이(張惠來)당서기, 왕지아뤠이(王家瑞)전 칭다오 시장 등 40여명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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