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공무원 사이버 시위 꼴불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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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25일 오전10시. 충남 천안시 일부 간부들이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했다.

전날 오후 늦게 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바른길' 이란 가명으로 어느 시공무원이 인사행정에 대한 불만을 원색적으로 털어놓은데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 글은 이날 오전 삭제됐다.

또 지난 14일 시민단체 간부와 한 시민(모두 실명기재)이 시가 추진하고 있는 시청사 이전 문제에 이의을 제기했다. 그러자 이틀동안 시 간부들을 중심으로 9건의 반박 글이 게시판에 올랐다.

지난 19일 또 익명의 한 시민이 똑같은 문제로 글을 올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박글이 뒤따랐다. '1차 반격' 에 참여하지 못한 6명이 뒤질세라 나섰다.

모두 15건의 글에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 옛날엔 중벌로 다스리던 죄" 라든가 "당신들이야 말로 고집쟁이" "소수 몇사람이 떠드는 소리" 등 인신공격적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다.

정모씨는 '일부 인사와 모 시의원은 정치적 야망을 키우려고…' 라고 썼다가 당사자들의 항의방문으로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시민 여론을 듣자고 만든 자유게시판이 쓴소리는 용납않는 '시정 옹호판' 이 되어 가고있다. 시정을 비판하는 시민에게 공무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달려드는 모습이다.

게다가 일부는 "막중한 시정을 이끄시는 탁월한 목민관" , "십수년간 무한봉사를 하면서 천안의 큰 획을 긋는 큰일을 하고 있는…" 등 시장에 대한 아부성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시민들이 시 행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주무부서 직원이 차분하게 근거를 들어 설득하면 될텐데….

물론 점잖치 못한 표현을 쓰는 시민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무원들까지 똑같은 수준의 글로 맞대응해야만 할까. 그것도 동료에게 질세라 네티즌의 표적이 된 상관에게 충성경쟁하듯 달려들어 시민을 몰아세우는 모습이 딱하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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