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국 '대북분업'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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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 조야(朝野)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연일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스캔들이 아닌 대(對)한반도 정책 문제가 미국 내에서 이처럼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이후 한편으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대북 강경발언을 거듭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해왔다.

이같은 '부시식 외교' 의 모호성과 향후 전망 등이 모두 도마에 올라 미 언론과 학계.외교가의 열띤 논쟁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세미나와 미 외교협회가 부시 행정부에 보낸 건의문을 통해 이같은 논란을 살펴본다.

미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에선 27일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이 모여 '변환기의 한국-김대중 정부 3년' 이라는 주제로 이틀째 세미나를 열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돈 오버도퍼 교수(전 워싱턴포스트 외교전문기자),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대사, 더글러스 팔 아시아태평양정책센터 소장, 토니 홀 하원의원(민주) 등 내로라 하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참가한 이 세미나에서는 햇볕정책과 북.미 관계, 한반도의 장래를 둘러싼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토니 홀 하원의원〓한반도의 최근 변화는 거의 혁명적이다. 우리는 북한과 대화하고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 미국은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원조가 북한을 대화와 협상으로 끌어냈다.

나는 그동안 여섯번이나 북한을 방문하면서 느리긴 하지만 변화가 일어나는 걸 봤다. 우리가 그들을 먹여 살리면 그들은 이를 기억할 것이다. 인도주의적 활동을 정치적 대화의 토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제임스 릴리〓대북 협상의 전제조건들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더 적은 것을 가지고도 미국과 한국, 일본의 국익에 도움을 주는 협상이 가능하다. 북한과의 협상은 먼저 분석을 한 뒤 준비가 됐을 때 시작해야 한다. 외교협회(CFR)가 부시 대통령에게 권고한 것도 그것이다. 미 행정부로서는 미사일 협상을 할 태세를 갖췄을 때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은 준비가 안돼 있다.

분업이 필요하다. 金대통령은 북한을 정치.경제적으로 개방시키는 데 앞장 서고 미국은 이를 지지하면서 대량 파괴무기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재래식 무기 감축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金대통령은 북한을 개방시키는 훌륭한 일을 했다. 그러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게 거의 없어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공격을 받는다. 63%의 한국민이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검증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보다 분별있는 상호관계를 추구하려는 것이며 북한이 확실한 신뢰구축 조치를 제시하기를 바라고 있다.

▶더글러스 팔〓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항구적이진 않지만 분명한 긴장완화를 가져왔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를 시험하려는 강한 유혹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누가 누구를 더 필요로 하느냐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더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미국이 북한을 더 필요로 하는지를 따지는 시험 기간은 불가피하다.

한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와 인도주의적 문제를 담당하고 미국은 대량 파괴무기 문제를 맡는 분업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이 분업은 한.미.일 3국간의 많은 협의를 필요로 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역할에 관해 혼란이 있는데 재검토는 필요하지만 변경은 안된다. KEDO 문제를 클린턴 전 행정부가 마무리하지 못한 미사일 문제와 연결해 해결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은 2백만㎾의 전력이 당장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한은 경수로 건설을 통해 전력이 공급된다고 해도 송.배전망이 부족해 문제다. 북한이 미사일 계획을 포기하면 전력공급과 송.배전망을 건설해주는 방안을 제의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개발 포기와 기존 노동미사일의 해체, 그리고 이에 대한 적절한 검증에 동의하는 대가로 한.미.일 3국이 이를 건설해 주는 방안도 가능하다.

▶돈 오버도퍼〓한반도의 상황은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으로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전례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인데 대부분은 金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의 공적이다. 앞으로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전개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한.미.일의 대북정책 공조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또 중국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기본 입장이나 주한 미군의 주둔,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정권의 성격 등도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은 있는 그대로 상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상대할 수는 없다. 평양과 외부 세계의 관계는 유례없는 발전을 했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한 검토를 조속히 완료하고 이행해야 한다. 부시팀은 한반도의 상황을 진전시키고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와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실행가능하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리〓김진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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