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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北京의 고택 문화재

중앙일보

입력

독립운동가였던 고하 송진우선생의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보도가 있다. 서울에도 고택문화재가 늘어 날 전망이다. 사실 500년 이상 조선왕조의 정도였고 근현대 한국의 심장부인 서울에 과거 유명인사의 고택의 보존이 인근국에 비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늘 있었다.
베이징(北京)은 세계적인 역사 도시답게 수많은 고택 문화재(名人故居)가 있다. 베이징의 후통(胡同)골목을 다니면 四合院이 나오고 그 곳에는 누구 누구의 故居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역사적 인물의 경우 그들이 사용한 물건을 수집하고 살던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후세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역사의 교육현장이 된다.
淸의 道光帝의 여섯째 아들인 공친왕이 살던 恭王府는 지금까지 화원(정원)만이 보존되어 있었다. 중국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화원에 이어 공친왕이 살던 주택등 거주공간도 복원하였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청대의 王府의 시설이며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孫文의 미망인 宋慶齡의 고택도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기념관에는 그녀의 손때 묻은 물건이 즐비하다. 중국정부는 淸의 마지막 황제 溥儀가 태어났던 醇親王府를 개조하여 손문의 미망인이 살게 하였다. 그 뿐 아니라 베이징에는 魯迅, 梁啓超 등 이름 있는 근대 인물의 고택(故居)도 잘 보존 되어있다.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도 역사의 도시이다. 과거 에도(江戶)시대에는 일본 최고 권력자인 쇼군(將軍)이 265년간 살았던 실질적인 수도였다. 에도시대에 지방호족 다이묘(大名)의 주거지가 많았지만 명치유신후 대부분 정부에 몰수되어 학교부지나 공공기관으로 사용되어 고택이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東京에서 우리가 한번은 찾아가 보아야할 고택이 있다면 바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부처가 살았던 고택일 것이다. 황태자 李垠은 7살때 유학의 명목으로 당시 통감 이또오 히루부미(伊藤博文)의 손에 끌려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후 일본의 황족 니시모토노미야(梨本宮)의 장녀 마사코(方子)와 정략 결혼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에서 사실상 인질로 살아왔다. 1928년 일본의 궁내성에서 설계하여 지은 황태자부처가 살던 고택이 다행히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일본 굴지의 호텔재벌 세이부(西部)그룹이 경영하는 아카사카(赤坂) 프린스호텔이 그곳이다.
태평양 전쟁후 황태자로부터 고택을 구입한 세이부 그룹은 고택 남쪽에 멀리 바다(도쿄만)가 보이는 드넓은 정원을 헐어내고 현대식 고층 호텔을 지었다. 그리고 황태자부처가 살았던 검은 색갈의 서양식 2층 양옥은 트리아농이라는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개조 영업을 하고 있다. 어떠한 안내판도 없어 어느 누구도 그 곳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부처가 살았던 고택임을 모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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