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교육 4반세기] 전문가 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필자는 15년 전 3~6세의 신동들을 전국에서 1백44명 발굴하고 그 학부모들을 지원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이들의 영재성을 계발시켜 주려던 전문가들과 교육부의 노력은 평등교육철학과 '영재교육은 귀족교육' 이라는 여론에 밀려 지금까지 좌절됐다. 대중매체의 신동 관련 보도를 신기해 하고 재미있어 했을 뿐 아무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이 과거 신동이었다는 사실 외엔 특별한 점이 없는 보통 사람으로 커버렸다. 심지어 기본교육마저 받지 못한 아이도 있다.

영재성은 타고나지만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한다. 미국의 터먼 교수는 1920년대에 IQ 1백40 이상의 10~11세 영재 1천5백명을 35년간 추적했다. 그 결과 지능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고, 교육에 따라 역사적 성취를 하거나 실패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러시아 학자 바바예바는 타고난 영재의 25%는 아예 발굴되지도 못한 채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영재는 또래의 보통 아이와 학습 특성이 매우 다르다. 따라서 보편적인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으로는 학교생활이 지루하다. 그래도 어린 신동들은 불만스러운 학습과정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자 열심히 노력한다. 알아도 모르는 척, 궁금해도 질문하지 않기, 타오르는 지적 욕구 억제하기…. 일부 신동은 비생산적이거나 심지어 파괴적인 활동에 지적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한다.

선진국들은 우리가 평준화를 시작하던 70년대 후반부터 영재교육에 열을 올렸다. 이스라엘은 초등 1, 2학년 때 심화학습 프로그램을 투입해 3학년 때 모두가 영재 판별 검사에 응하게 한다. 영재로 판별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별교육을 시킨다.

미국은 상위 3~5%의 영재는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영재를 위해 88년 연방정부법을 제정해 매년 1천만달러를 특별 지원한다.

21세기는 국민이 보유한 정보창출 능력이 국가의 존립까지 가름하는 지식정보화 시대다. 영재들의 가능성을 사장시키지만 않아도 우리의 정보창출 능력은 수십배, 수백배로 증가할 수 있다. 상위 1%가 어렵다면 1백명이라도 발굴해 그 가능성을 살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소질.능력 수준.특성에 맞는 개별화 교육이 많은 초.중등학교에 확산돼야 한다. 당장 어렵다면 영재학교, 영재학급, 대학.교육청.연구소 부설 영재교육원에서 방과 후.방학.주중 하루 만이라도 개별화된 맞춤식 교육을 해야 한다. 영재를 발굴하고 잠재력을 계발하려는 정부의 노력과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조석희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