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하이테크와 하이터치 조화 이룬 사회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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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퇴계(退溪)이황(李滉)탄신 5백주년을 맞는 2001년.

퇴계사상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퇴계를 잊고 있던 사이에 서양의 과학자와 학자들은 오히려 퇴계 쪽으로 눈을 돌려 '동양의 문' 을 활발히 두드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마이클 칼튼 교수는 "깨어나라 한국인이여. 한국에는 퇴계가 있지 않으냐" 고 하면서 21세기적 가치와 현대문명의 중심에 퇴계를 놓고 있다.

'더 작고, 더 싸고, 더 빠른 것' 을 경쟁적으로 추구해온 서양인들이 근래에 왜 이처럼 동양의 정신세계로 파고들려 하는 것일까.

닭 우는 소리 대신에 자명종이 우리의 새벽을 깨우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집안에 앉아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고, 달 착륙에 비견되는 인간 지놈 프로젝트도 완성된 요즘이다.

이른바 '하이테크' 문명의 시대다.

하이테크 문명은 분명 우리에게 편리성을 가져다 주었다.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하이테크 문명은 인간소외와 정신적 가치의 상실,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문제를 가져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첨단기술이 전적으로 인류의 행복을 보장하는 열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나아가 과연 하이테크 문명이 21세기에도 유효한 패러다임으로 작동할 것이냐는 의문마저 학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일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이러한 의문과 우려에 대해 우리에게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고 있다. 고심 끝에 그가 내놓은 화두가 바로 '하이터치' 다.

사람과의 접촉과 교감을 통해 이뤄지는 감성과 사랑의 힘은 단순히 기계적인 합리성과 속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하이터치의 핵심이다.

해맑은 아이의 미소, 어르신을 보면 자리를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 가난한 이웃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손길 등과 같이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하이터치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하이테크가 결코 가져다 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이터치는 인간을 참으로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감성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인간적인 손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왜 그토록 서구인들이 퇴계사상을 찾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인 사단(四端)의 마음을 지키고, 스스로 경(敬)을 실천하면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덕사회를 갈구했던 퇴계사상을 통해 하이테크 문명에 의해 공허해진 마음을 채우려 했던 것이다.

서구인들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이테크 자본주의를 발흥시켰다면, 이제 우리는 인간성의 본질을 중시하는 정신적이고 지적인 하이터치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하이터치는 우리들의 가슴속에 내재된 인간성이자 본질이다.

논리보다는 창조적인 영감에, 물질적 자본보다는 지식과 감성의 정서적 자본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새로운 하이터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하이테크와 하이터치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 즉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통해 과학기술이 놓칠 수 있는 한계를 보완하고 대화와 사랑이 함께 하는 정이 넘치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소망하고 추구하는 사회일 것이다.

우리는 하이테크가 가져다 준 열매를 즐기면서 기술과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환경과 문명이 공존할 수 있는 하이터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주인이 돼야 한다.

이제 우리 내면에 잠재돼 있는 하이터치를 다시 일깨워내야 할 때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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