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인니] 中. 와히드 연명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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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정치는 이슬람이 좌우한다.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연이은 퇴진요구 시위에도 불구하고 버텨내는 것도 회원 3천5백만명을 거느린 인도네시아 최대의 이슬람 조직 나들라툴 울라마(NU)가 그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히드는 15년간 NU의장이었으며, 현 NU 의장도 와히드의 조카인 사이풀라 유수프다.

이들은 반 와히드 시위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몰려가 친 와히드 시위로 맞불을 놓고 있다. 지난달엔 동부 수라바야에서 와히드의 탄핵을 주도한 골카르당 당사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도 불사했다.

NU 하지 아크마드 수조노(51)사무총장은 "헌법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을 쫓아내려는 것은 헌법에 반하는 범죄행위며 정치적인 음모" 라고 말한다.

친와히드계인 NU가 빈민층 이슬람교도들을 대변한다면 또 다른 이슬람 세력인 무하마디아(회원 2천5백만명)와 이치미(ICIMI.이슬람지식인연합)는 각각 중산층과 부유한 지식인층을 대변하는 반와히드의 중추 세력이다.

무하마디아의 수바기오 디딕 대변인은 "대통령이 부패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국가적 수치" 라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고 말했다. ICIMI도 같은 입장이다.

이처럼 수적으로 열세인 무하마디아와 ICIMI가 강력한 NU에 맞서는 형국으로 인해 와히드가 지도력에 일정 부분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도 뒤뚱거리며 '연명' 해나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같은 전망을 가능케 하는 변수는 크게 세가지다.

우선 헌법이 너무 모호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헌법은 독립 당시에 제정된 '1945년 헌법(UUD 1945)' 으로 대통령의 탄핵사유를 '반역과 비헌법' 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둘째는 반 와히드파에 기득권 세력이 많아 정부가 사정을 구실로 이들의 약점을 물고 늘어질 경우 와히드 축출 목소리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끝으로 군부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의 우유부단하고 중립적 태도도 와히드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는 요인이다.

하비비 전 대통령의 언론담당 특보를 지낸 정치학자 데위 포르투나는 "(와히드가 조기 하차는 하지 않더라도) 그의 비민주적 태도, 지도력 결핍, 의심스러운 지적 수준 등은 끊임없는 근심거리를 제공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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