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아시아가 세계에 기여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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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계 금융 위기, 기후변화 등 지구촌 공동의 문제에 직면한 지금 많은 아시아 국가는 집단적 대응이 주체성을 훼손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일례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신뢰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IMF에 수십억 달러를 출연한다는 데 동의했다. 아시아의 태도엔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아시아 국가들은 단순히 출연금을 늘려 IMF 지분 확보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IMF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데 관심을 높인다.

지구촌 차원의 문제들에 아시아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는 데는 긍정적·부정적 측면이 혼재한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갈등보다는 합의 도출을, 고매한 원칙보다는 실용적 해결을,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선을 중시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반면 대결을 피하려다 보면 한정된 시간 안에 의미 있는 합의가 어려워질 수 있다. 합의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배후에서 정치적 협상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정적 측면을 줄이면서 아시아가 다음 과제들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평화·안보:아시아에는 중국·인도 등 새 해양 강국들이 있다. 이들이 미국과 같은 전통적 해양 강국과 협력해 해상 운송로의 안보를 향상시킬 수 있다. 많은 아시아 국가가 소말리아 해적 퇴치에 협력했다. 중국이 확대하고 있는 해외 파병은 치안 취약 국가들의 평화 정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기후변화:한국·중국·일본은 주요 녹색 기술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또 대체 에너지 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녹색 기술 이전을 촉진할 수 있는 혁신적 시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금융 규제: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시장 규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중국은 미국 달러화가 세계 경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데 의문을 표시하며 세계 통화 창출을 제안했다. ‘아세안+3(동남아국가연합+한·중·일)’가 주도한 역내 국가 간 통화 스와프(교환) 협정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며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도 검토되고 있다.

◆보건: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조류독감, 신종플루(인플루엔자A/H1N1) 등에 대한 아시아의 경험은 주의 깊게 연구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지구촌 전염병을 다루는 데 새로운 국제적 합의 체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기업:아시아는 사회적 기업 부문에서 앞서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 신용대출을 해주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이나 농촌 결핵 퇴치에 앞장선 ‘방글라데시 농촌발전위원회(BRAC)’ 등은 사회사업을 하면서 수익도 창출하는 혁신적 방식을 만들었다.

키쇼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정책대학원장
정리=정재홍 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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