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현정부 주택정책 '변죽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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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해 말 서울 강남구 청담동 D아파트는 1백32가구 분양에 1순위에서만 1만2천8백여명이 몰려 청약률이 97대1에 이르렀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79%만이 계약을 마쳐 분양 열기를 무색하게 했다. 대거 몰려든 '떴다방' (철새 중개업자)들이 당첨된 아파트 중 로열층이 아닌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1999년 4월 분양권 전매(轉賣)가 허용된 뒤 인기를 끌 만한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이 북새통에 정작 실수요자들은 청약 기회를 잃고, 분양 열기와 달리 막상 계약률은 낮아 주택업체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

이와 관련, 한국건설산업연구원(www.cerik.re.kr)은 21일 '건설산업의 현안과 대책' 보고서에서 "부동산 경기를 회복시키면서도 서민의 주거안정을 꾀한다는 현 정권의 주택.부동산 정책이 겉돌고 있다" 며 분양권 전매 허용 조치를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지적했다.

정부가 98년부터 지금까지 내놓은 주택.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은 모두 11차례. 연구원은 "정책 방향은 옳으나 좀 더 화끈하게 지원하지 못해 미적지근한 결과만 낳았다" 고 주장했다.

◇ 겉도는 서민 지원책〓정부는 그동안 서민용 주택정책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네차례 세제.금융 지원안을 내놨다. 새 집을 살 때 양도세 면제, 취득.등록세를 감면해 주는 조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혜택 폭(국민주택 규모 이하 취득.등록세 25% 감면)이 작아 구매력을 회복시키기에 턱없이 모자랐고 기간도 99년 6월 말로 끝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연구원을 지적했다.

내외주건 김신조 대표는 "정작 주택업체와 소비자가 취득.등록세를 이중으로 내는 조항은 개선하지 않아 분양가만 오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며 "양도세 등 부동산 거래 관련 세금을 손대는 게 효과적" 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주택기금 융자 확대 조치는 주택업체의 자금난을 덜어 주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서민들에게는 혜택이 없었다. 임대주택을 입주자에게 분양할 때 적용되는 대출승계 이자율(연 7.5~9%)이 업체 지원용(연 3.0~5.5%)보다 지나치게 높은 것이 이를 반영한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 업체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다. 주택업체들은 그들대로 지나친 소형(전용 18평 이하)중심의 임대주택 확대 방안이 수요자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해 빈 집이 많아져 건설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다.

◇ 경기 못살린 부동산 정책〓준농림지 폐지에 대해 연구원은 "효율적인 토지이용을 위한 조치로 바람직하다" 면서도 "시기적으로 주택경기 활성화 정책과 충돌해 경기 악화를 불렀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고 분석했다.

수도권에 택지를 공급할 대안이 없어 2~3년 후에 주택공급 부족이 예상되며 준농림지를 가진 주택업체의 경영난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주택건설사업협회에 따르면 업체들이 갖고 있는 준농림지는 경기도에만 1백50만평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태황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정책 방향은 제대로 잡았으나 효과 예측을 잘못해 주요 정책이 겉돌고 있다" 며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금융.세제 등의 지원을 보다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고 제시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은 단기간에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며 "특히 최근 몇년간 위축된 소비심리 등을 감안하면 주택.부동산 경기만 나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고 말했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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