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폭로자' 크루그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위대한 폭로자(The Great Debunker)' .

1996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크루그먼을 소개하는 글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관습적인 지혜를 깨는 몇 안되는 '에고' (자존심)로서 그를 이 한마디로 집약한 것이다. 이는 경제학의 원론을 적용해 잘못된 주장을 꼬집는 독설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드러내는 상징어자 별칭이다.

94년 그가 한국 등 아시아를 향해 쏟아낸 '위대한 폭로' 도 마찬가지다. 그는 저명한 학술지 '포린 어페어스' 에 실린 '아시아 기적의 신화' 라는 글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경제성장은 허구" 라는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아시아의 고속 성장은 '요소생산성' (기술진보)의 향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요소투입량' (노동과 자본)의 증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요소투입량은 무한정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성장도 곧 한계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네마리 용(龍)' 운운하며 그야말로 성장가도를 달리던 당시 그의 이런 주장은 독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의 경제가 흔들리면서 그의 통찰력과 논리가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그의 논리적 타당성에 대한 많은 반론이 있을 수 있겠으나, 어쨌든 그의 경고를 귀담아 들었다면 '유비무환' 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시아의 위기에 대한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응책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바 있다. 한마디로 미국과 IMF의 처방은 정통 경제이론을 팽개친 채 투기자들과 벌이는 '신뢰게임' 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53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크루그먼은 예일대와 MIT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MIT 박사 논문(77년)의 지도교수는 노벨경제학상 수장자인 로버트 솔로다. 매년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크루그먼은 국제무역론과 국제금융론.산업정책.경제지리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 업적을 쌓았다. 이 분야의 이론을 그는 컴퓨터 영문 키보드의 첫줄을 따 'QWERTY 경제학' 이라고 부른다.

이런 업적으로 그는 91년 미 경제학회가 '가장 탁월한 소장 경제학자' 에게 2년마다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을 받았다. 지난해 1월 2일부터 뉴욕타임스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96년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잡지 '슬레이트(Slate)' 에 '우울한 과학' 이란 제목의 경제칼럼을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