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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다, 만지지 말라” 엄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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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난 2일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사무소. 입주기업의 3통(通) 문제, 즉 통행·통관·통신 문제를 논의하는 남북실무회담에서 북측 대표들은 남측 민간단체가 살포하는 대북 전단지, 이른바 ‘삐라’에 대해 “반(反)공화국 책동을 중단하라”며 세게 항의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은 남북이 만날 때마다 전단지 문제를 제기한다”고 했다. 전단에는 북한의 인권 상황,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자 관계, 사치생활 등이 적혀 있다. 북한의 북쪽으론 휴대전화로, 남쪽으론 삐라로 공격을 받는 형국이다. 그러면 북한 당국은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등 남측 민간단체가 보내는 전단지를 어떻게 수거하고, 어떤 방식으로 주민들을 단속할까.


남북풍이 부는 봄철, 폭 1.8~2m, 길이 12m 비닐풍선에 담겨 하늘을 날다 북쪽 황해도와 평안남도·강원도에 살포되는 전단지는 원산·함흥·남포·평양 등에 집중 뿌려진다.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북한 당국 입장에선 주민들이 전단 내용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게 관건”이라며 일반 주민들에겐 “‘삐라’를 발견하면 보지도 말고, 줍지도 말라. 위치만 표시했다가 신고하라고 지시한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전단이 한번에 10만~15만 장씩 대량 살포되면서 직장별 민병조직인 노농적위대를 동원해 수거에 나서고 있다. 이때도 공포심을 주입시킨다고 한다. “반드시 장갑을 끼고 나와라. 맨손으로는 절대 만지지 마라. 몸에서 이상이 발생하면 즉시 알려라”고 반복한다. 전단지에 세균이나 화학물질이 묻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한 탈북자는 “북한 주민들이 순진해 그대로 믿는 경우가 많다”며 “수거작업을 마친 뒤 감기에 걸린 한 주민이 ‘골(머리)이 아프다’고 신고하면, 곧바로 병원차와 의료진이 나타나 법석을 떤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강원도 원산에 살았던 박상학 대표는 “당시에 남측이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보낸 전단물을 봤다”며 “그때도 ‘화학물질이 묻었으니 만지지 말고 신고만 하라’고 지시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전단에는 미스코리아 대회 사진, 귀순한 북한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진과 함께 스타킹·사탕 같은 물품이 담겨 있었다”며 “당국이 스타킹을 신으면 살이 썩고 사탕을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겁을 줬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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