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연스님 유화소설 '빼빼' 인생진리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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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집오리는 날지 못한다. 갇혀 편히 지내다 보니 나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같은 족속인 청둥오리는 시베리아 호수에서 언 하늘을 날아 우리의 호수를 오가며 제뜻대로 살고 있다.

어린 오리 '빼빼' 는 날겠다는 꿈 하나로 무리에서 외롭게 뛰쳐나와 천하를 주유하며 갖은 수행 끝에 마침내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열아홉에 동백꽃 피는 선운사로 출가, 태국.인도 등지를 거쳐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정진하고 있는 재연 스님이 최근 펴낸 『빼빼』는 동화나 우화.소설 등 어느 한 문학 범주에 갇히지 않고 다 아우른다.

또 온가족이 각자 살아온 연령이나 깊이만큼만 깨치면서 재미 있고 넉넉하게 읽을 수 있는 보기 드물게 좋은 책이다.

"저 빈 하늘에 날아가서 뭘 어쩌겠니? 거기 가서 솔개를 잡아올 것도 아니고 말야! 우리한테는 이 호수와 물갈퀴만 있으면 돼. 배 터지게 먹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춤추면 됐지, 안 그래?"

자신을 편안하게 보호해주는 무리를 떠나려는 빼빼에게 오리들은 이렇게 물으며 만류한다. 그러나 빼빼는 '그만큼으로 족한가' 라고 자문하며 날아야겠다는 꿈 하나로 길을 떠난다.

비둘기 할머니한테서는 "네 소리가 그대로 메아리 되어 돌아오듯 세상은 네 스스로 가슴에 품고 간직한 만큼이란다" 며 '꿈 꾼 만큼 세상은 이뤄진다' 는 가르침을 받는다.

구슬피 울어대는 소쩍새 아주머니는 "네게는 울음으로 들리지만 나는 노래하고 있는 것" 이라며 "자기가 만든 틀에 세상을 끼워 맞춰 보지 말라" 고 한다.

또 두루미에게서는 집착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명상법을, 올빼미한테서는 '몸은 마음의 그릇이다' 라며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릴 수 있는 수행법을 배워 드디어 날아오르는 데 성공한다.

빼빼는 '그러나 날아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라고 물으며 결국 무리에게로 돌아가 나는 법을 가르쳐 모든 오리와 함께 날아오르며 원초적 대자유를 향한 길잡이가 된다.

'그래 지금 너는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는가' 라고 묻는 속세에 있는 친구들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될 정도의 깊이를 이 책은 갖추고 있다.

스님은 끝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일러준다. "잘 산다는 것은 오늘 이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는 거야" 라고.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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