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첫 서신교환 가족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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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 서신 교환이 이뤄진 15일 대한적십자사 본사에는 남측 가족들이 달려와 북에서 온 편지를 읽고 또 읽고는 편지봉투에 뺨을 비비며 눈물을 흘리는 등 감격을 참지 못했다.

○…김민하(金玟河.67)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둘째 형 성하(成河.75)씨로부터 온 편지를 받자마자 여의도 넷째 형 윤하(潤河.71)씨의 집으로 달려갔다. 백수가 넘은 어머니 박명란(朴命蘭.100)씨에게 편지를 읽어주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의 안부를 몰라 자나 깨나 가슴 아프게 지내 왔는데 오늘 뜻밖에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쁜 소식에 온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50년 만에 어머님께 편지를 올리는 제 마음은 높뛰고 있습니다. "

민하씨가 큰 소리로 편지를 읽었지만 어머니는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환갑 때 따뜻한 밥 하나 올리지 못한 불효에 죄송한 맘 금할 길 없습니다. "

성하씨의 편지에는 6.25 당시 행방불명됐던 셋째 옥희(玉姬.73)씨, 다섯째 창하(昌河.69)씨도 북한에 모두 살아 있다는 기쁜 소식이 담겨 있었다.

○…적십자사에 직접 찾아와 북측 동생 강병섭(71.남포시 와우도구역)씨가 파란 볼펜으로 빽빽이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간 남측 형 강병호(86.서울 영등포구)씨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동생 병섭씨는 "저는 큰 공장의 기사로 일했으며 손자만 9명인 23명의 대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며 "형님이 건강하신지 궁금합니다" 고 안부를 물었다.

○…한국전쟁 중에 행방불명된 형부 황영준(82)씨로부터 편지를 받은 김윤희(71)씨는 "캐나다에 있는 언니에게 편지를 빨리 부쳐야겠다" 고 말했다.

金씨는 "형부가 동란 중에 행방불명된 뒤 언니 인희(78)씨가 4남매를 어렵게 키워오다 큰조카(황문웅.65)를 따라 75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갔다" 고 말했다.

金씨에 따르면 형부 황영준씨는 김일성대 교수를 역임한 북한의 유명한 화가로 한국화의 대가인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1974년 사망)화백의 유일한 제자다.

성시윤.정효식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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