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신작시집 '등신불 시편'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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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성(聖)과 속(俗), 깨침과 시정잡배의 무명(無明)의 삶 사이에 거리는 있는 것인가. 김종철(金鍾鐵.54)씨의 다섯번째 신작시집 『등신불 시편』(문학수첩.5천5백원)을 읽다 보면 한 줄로 꿸수 없어 보이던 두 세계 사이의 거리가 지워져버린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김씨는 앞서 펴낸 시집 『못에 관한 명상』에서 긴장된 은유로 성과 속 사이를 오가는 우리네 삶의 의미를 캐들어갔었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는 그런 비유법 등을 치워버리고 성.속을 한통속으로 꿰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죽은 그들 중에/아무도 돌아와서 말해주지 않는다/자신의 독 하나 깨뜨리지 못하면서/성불을 바라보다/독이 되어버린/바보 등신 같은 놈!" ( '바보 등신' 전문)

지난해 말 타계한 김기창 화백이 한 경지를 이뤄 보여준 세계가 '바보 산수' 다. 선경(仙境)처럼, 이상향으로 멀리 바라보던 기존의 산수화를 친근하게 바짝 우리 세계로 끌어와 보여줬다. 『등신불 시편』의 시들 또한 자신의 몸을 불태운, 끝간 데 없는 수행의 성불(成佛)을 짐짓 '바보 등신' 이라 욕하며 속된 세계에서 펄펄 살아 있는 깨달음을 구한다.

"구멍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우리들은 늘 죽어서 나온다/어떤 때는 반쯤 죽어서 나온다/그런 날에는 벼랑 아래 한없이 나가떨어지듯/코를 골며 잠만 잤다//어디 그뿐인가/세상의 참호 속에 들어갔다/나온 날에도/우리들은 반쯤 골병 들어서 나왔다/어떤 자는 아예 죽어서 실려나왔다//소녀경이 이르기를/구멍 속에 들어갔다 나올 때는/죽지 말고 꼭 살아서 나와야 된다고/당부하였다/죽어도 죽지 않고 사는 법/소녀경이 내 나이 오십을 가르쳤다" ( '구멍에 대하여' 전문)

이 시집에는 '등신불' 연작과 함께 '소녀경' 연작 14편도 실렸다. 『소녀경(素女經)』은 황제와 몸시중을 드는 여성 사이의 온갖 섹스 행위와 그 비법을 집대성한 중국 고대의 '성경(性經)' 이다. 이 섹스 이미지를 가감 없이 빌려 김씨는 세상살이의 이치에 도달하려 한다.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성과 속의 나뉨을 넘어 통합체로서 즉물적으로 살아내려는 것이다.

"젊으나 늙으나 남자들은/모두 다 그녀를 누님이라 부른다/처녀 적 모습을/어느 문학 특집 화보에서 보았는데/그런대로 삼삼했다//한잔 거나하면/ '한 달에 한 번 하는 그거 때문에 못 살겠대이' /하며 엄살 떠는 모습을 보면/아직도 그녀의 시가 왜 싱싱하고 자극적인가를/금방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우리들의 누님' 중)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태도로 김씨는 문단, 특히 여성 문인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있다. 격식 없는 그 즉물적 태도대로 나온 이번 시편들이 위 누님 시처럼 싱싱하고 직설적이다. 그 대가로 시적 긴장은 놓치고 있지만.

이경철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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