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참여하는 ‘호스피털 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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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뇌 자극 … 인지능력 발달시켜

“아픔을 공감하는 환우들과 함께하니 단합이 더 잘되더라고요.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이대 여성암전문병원에서 유방암 치료를 받는 ‘이유회’ 회원 20명은 지난 연말 병원에서 열린 콘서트와 송년파티 무대에 올라 합창을 했다. 노래 제목은 ‘사랑으로’ ‘냉면’ ‘들장미’ 등.

이유회 이경옥 회장은 “우리 노래가 병원에서 치료 중인 다른 환우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 보람됐지만, 주 2회씩 한 달 넘게 만나 연습하는 동안 우리가 더 즐거웠다”고 말했다. 암환자라는 공통분모가 이들의 투병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 회장은 “암과 싸우는 데 곁에 치료 동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됐다”고 덧붙였다.

분당서울대병원 로비가 콘서트 홀이 됐다. 가수 이안 초청 공연이 열린 것. 휠체어를 탄 입원환자들이 눈에 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듀오글로리아’란 팀으로 연주봉사를 하는 피아니스트 정보미씨도 원래는 환자였다. 두 차례나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정씨는 “많은 환자가 연주를 듣고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병이 낫는 것 같다’고 하신다”며 “환자들의 투병생활에 힘과 위로가 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음악은 소리와 음률을 통해 환자의 상처나 정서를 어루만져주고, 뇌를 자극하기 때문에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을 발달시키는 효과가 있다.

어린이 환자 위해 친환경 물감 사용

병원 앞마당에 펼쳐진 ‘화이자 사랑의 병원 그림축제’. [한국화이자제약 제공]

충남대병원 환자들은 화가 선생님이 오는 날이면 본관 4층 휴게실 앞에 줄을 선다. ‘박석신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 그리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한 달에 두 차례 개최되는 이 행사는 환자와 화가가 대화를 하며 함께 한국화를 완성해 가는 시간.

환자가 빨간색·노란색·초록색 등 화사한 색으로 점과 선을 그리자 물감이 서서히 화선지를 물들인다.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아픈 마음을 위로하던 박 작가는 환자가 그린 점과 선을 꽃과 풀·산 등으로 승화시켜낸다. 박석신 작가는 “병실에 우울하게 있던 환자들이 그림도 그리고 대화를 하면 얼굴이 활짝 밝아진다”며 “완성된 그림은 병실에 두고 감상하거나, 편지를 덧붙여 주변에 선물한다”고 말했다.

캔버스와 물감 등 그림도구가 모두 갖춰져 있어 환자나 보호자·의료진들이 잠시 지나던 길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한국화이자제약 제공]

병원 환자와 보호자·의료진·자원봉사자 등 수백 명이 함께 색칠에 참여해 대형 그림을 완성하기도 한다. 한국화이자제약은 미국 병원예술재단과 공동으로 2002년부터 매년 3개 병원을 순회하며 ‘화이자 사랑의 병원 그림축제’를 펼치고 있다. 그림축제가 열리는 이틀간 병원 입구에는 꽃·나무·물고기·새 등 밑그림이 그려진 대형 캔버스가 설치된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잠깐 짬을 내 색칠에 참여할 수 있다. 백혈병이나 소아암 등 어린이 환자가 동참하기 때문에 친환경 물감을 쓴다는 게 특징이다.

한국화이자제약 대외협력부 정다정 과장은 “어릴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셨다는 한 할머니는 ‘50년 만에 처음 붓을 잡아본다’며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자리를 함께하셨다”고 소개했다. 미술에 참여하는 일은 감정 표현이 서툰 어린이와 치매노인에게 인지치료 효과가 있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은 병원 벽에 설치돼 많은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핸드 페인팅·풍선 아트 인기

전남대병원은 지난해 10월 제5회 ‘천사의 날’ 행사를 갖고 환아들과 색깔 있는 찰흙으로 인형을 만들어 소아청소년과 병동에 진열했다. 또 색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거나, 두꺼비·나팔꽃 등을 접어 병실을 꾸미기도 했다. 전남대병원 김랑순 수간호사는 “풍선으로 강아지·칼·꽃을 만드는 풍선 아트, 손이나 손등에 그림을 그려주는 핸드 페인팅 등도 환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작품을 만드는 동안 환자들은 고통을 잊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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