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거 때면 나오는 고질, ‘명분 없는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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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선거를 앞두고 명분 없이 당을 만들고, 당적을 변경하고, 정치적 근거지를 바꾸는 건 한국 정치의 대표적 고질(痼疾)이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고질이 여지없이 재발하고 있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가칭 ‘평화민주당’이라는 호남 신당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현재의 민주당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지 못하고 친(親)노무현 386 중심으로 편파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는 DJ 비서 출신으로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지 않고 전통야당 민주당을 지켰던 인물이다. 그로서는 민주당의 현재 상황에 비판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진단이 맞더라도 이는 당내 개혁으로 해결되어야지 제1 야당의 분열로 갈 문제는 아니다. 그 당을 지지하든 안 하든 대다수 유권자는 민주당이 개혁과 단결을 통해 성숙한 제1 야당이 돼 거대 여당을 합리적으로 견제하기를 바란다. 한 전 대표가 명분 없이 당을 만들면 선거를 앞두고 출마 희망자를 끌어모으려는 ‘선거용 급조 정당’이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에 입당한 정동일 서울 중구청장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2004년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그는 2006년 지방선거 땐 한나라당으로 옮겨 구청장에 당선됐다. 그런데 최근 그의 사전선거운동 논란이 불거져 사법당국이 중구청을 압수 수색하자, 그 이후 다시 방향을 튼 것이다.

유시민 전 의원은 2008년 총선 때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도 고양시를 떠나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을에 출마했다. 당시 그는 “대구·경북에도 진보 정치인이 성장하는 게 필요하다”며 지역구 변경의 이유를 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경기도 지사 등 수도권에서 입신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도 주창하던 ‘경상도의 진보 정치인’이라는 대의(大義)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가 사부(師父)로 추앙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눈앞의 이익을 좇아 일관성 없이 행동해선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