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그날, 바로 내일일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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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35면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전해들은 북한 상황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북한의 화폐개혁 후폭풍 이야기였다. “북한 당국이 달러 사용 금지, 시장 활동 금지 조치를 내려놓고 바로 철회한 것은 중간 관료들이 사보타주(태업)를 했기 때문이라 한다.” “후계체제 확립을 위한 돈을 모으려 화폐개혁을 했는데 실패했다. 북한의 계획경제 체제는 이미 무너졌다. 모든 (국영)기업소가 장마당 경제와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보타주’ ‘기업소의 일탈’…. 자본의 단맛을 본 북한 권력층, 이들이 이반할 가능성이 상정되는 상황이 아닌가.

On Sunday

북한 붕괴론은 16년 전에도 있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직후 북한의 대기근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수년 내 붕괴할 것이란 예측이 대세였다. 미국은 그해 10월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가로 2003년까지 1000㎿ 원자로 2기를 지어준다는 내용의 제네바 핵합의를 체결했다. 미국 내에서 ‘퍼주기 합의’란 비판이 쏟아졌다. 협상을 담당했던 인사들은 나중에 “10년 후 북한은 이 세상에 없을 것으로 봤다”고 회고했다.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고, 김정일 체제를 확고히 해가며, 미국과 핵을 두고 기싸움을 벌였다.

또다시 ‘북한 붕괴론’이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을 테지만 2010년 봄 상황은 좀 다른 것 같다. 일단 국제사회 기류의 변화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북한에 다시 속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로 북한의 돈줄은 말라가고 있다. 한 번 쓰러진 김정일(68) 국방위원장의 건강, 불확실한 후계 체제도 문제다. 김정일은 70년대 후계자로 정해진 뒤 20년 동안 정지 작업을 거쳐 대중 앞에 나타났다. 스물여덟의 3남 정은은 갑작스레 후계자가 됐다. ‘2012년 강성대국’을 주창하고 있지만 시간이 없어 보인다.

북한 정권의 존립은 주민들을 바깥세상과 60년 동안 차단했기에 가능했다. “김일성 장군님이 나뭇잎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시며…”라는 어처구니없는 신화가 ‘진실’로 통할 수 있었다. 인간의 권력욕이 쌓아놓은 그 옹벽을 첨단의 과학 기술이 허물고 있다. 서울의 안방에서 북한으로 전화가 터진다. 언젠가는 인터넷도 가능할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DVD·서적이 단속을 뚫고 북한에 흘러 들어간다. 남한의 단체가 보내는 전단(일명 ‘삐라’)도 종이가 아닌 비닐이다. 청진 앞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주민이 삐라를 주웠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 중국이 있고, 북한 자체의 내성이 있어 수명이 오래갈 것이란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조짐이 있을 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둘러 보자. “94년 야단법석을 떨었어도 북한은 건재했다”는 인식이 화석처럼 굳어졌는지, 북한 붕괴 이후를 논의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북핵처럼 피로(Fatigue) 현상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나서 공개적으로 할 일은 아니지만 학계 등에서 한반도 운명을 가를 ‘그날’을 토론해야 한다. 통일기금 문제도 그렇다. 당해 예산 예비비로 충당할 규모도, 그럴 일도 아니지 않은가. 기금 한 푼 적립하지 않은 나라의 통일을 누가 거들어 주겠는가. 국제사회의 냉혹성을 다들 알기에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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