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호는 ‘양키스 브랜드’를 위해 100만 달러를 버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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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양키스를 사는 것은 모나리자를 사는 것과 같다. 모나리자를 싸구려 액자 속에 넣어 옷장 속에 감추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닌가.”

잘 알려진 것처럼 조지 스타인브레너 전 뉴욕 양키스 구단주는 그라운드의 독재자였다. 선수들에게 반드시 턱수염을 밀고 단정한 모습으로 플레이할 것을 요청했다. 1970년대 양키스를 인수했을 때부터 시작된 ‘드레스 코드’다. 양키스는 고급스러우며 그들만의 룰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야구 소비자들에게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전략이다. 스타인브레너의 ‘양키=모나리자론’은 그 차원에서 나왔다. 드레스 코드와 성적은 별 의미가 없다. 양키스의 가치를 유지하고 높이기 위한 책략이다. 양키스의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은 1936년에 등장해 몇 가지 사소한 변화를 제외하곤 유일하게 바뀌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유니폼 공급사인 마제스틱의 로고조차 상·하의 모두 노출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양키 이외의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양키스에 박찬호(37)가 뛰어들었다. 박찬호를 받아들인 양키스의 속내는 뭘까. 두터운 불펜에 또 하나의 경쟁카드가 필요했다.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뉴욕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박찬호의 영입을 놓고 “다다익선”이라고 짧게 강조했다. 박찬호의 보장된 연봉은 120만 달러다. 베테랑 투수의 중간계투 몸값 치고는, 그리고 양키스의 총 연봉(2억681만 달러로 당연히 30개 구단 중 1위다)을 감안하면 헐값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20만 달러는 양키스로선 박찬호가 조금이라도 삐걱댈 경우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액수다.

박찬호는 10개 팀이 자신에게 러브콜을 했다고 했는데 그중 택한 팀이 양키스다. 양키스는 값싼 베테랑 불펜을 원했지만 박찬호는 한국인 출신 최초 양키맨을 택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 야구 계획 중 하나는 양키스에서 뛰는 것이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코리아 브랜드’다. 팀 선택은 이와 관련이 있다. 필라델피아 또는 다른 구단을 택했다면 100만 달러 정도를 더 얻었을 것이다. 대신 그는 박찬호 야구의 브랜드 유지를, 나아가 업그레이드를 택했다. 모르긴 몰라도 에이전트는 분명히 반대했을 것 같다. 팀 내 경쟁 구도도 쉽지 않다. 에이전트에게 떨어질 수수료도 적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야구 진출, 최초의 올스타전 활약에 이어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6500만 달러에 계약하며 미국 야구에서 손꼽을 만한 메가톤급 장기계약을 성사시켰다. 여기까진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이민자의 이미지에 가깝다. 브랜드 전략은 방향을 서서히 바꾼다.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회 대회 마무리 투수로 등장한 데 이어 한국인 최초 양키맨이 됐다. 박찬호 야구는 계속 성장하고 진화한 셈이다.

양키스에서 성공 여부는 나중 문제다. 박찬호 야구는 100만 달러를 버리고, 양키스를 택함으로써 ‘도전해서 진화하는 박찬호’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1994년 시작한 미국 야구생활 17년 만에 박찬호는 핀 스트라이프 모나리자를 샀고, 이걸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걸어놓았다.

김성원 기자 rough197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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