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57. 멋대로 바뀌는 경기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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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겨울 두달간 벌어진 배구 슈퍼리그 경기는 팬들이 기억하기 쉽게 오후 2시에 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그러나 주관 방송사의 사정에 따라 30분씩 앞당겨 경기를 시작해 팬들만 골탕을 먹었다. 프로농구도 시작시간을 예정보다 1시간씩 변경하는 일이 잦다.

방송중계 여부가 경기일에 임박해 결정되기 때문에 방송 편성에 맞추려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긴다. 스포츠 이벤트의 주객이 뒤바뀌는 꼴이다.

씨름대회의 경우 방송사 중계마감을 위해 1, 2위 경기를 3, 4위 경기보다 먼저 치러 관중의 김을 빼기도 한다. 여름종목인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중계에서는 방송사가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저녁시간을 피하기 위해 주관 스포츠단체에 낮 경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여름 뙤약볕 밑에서 선수들이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관중도 거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폭설이 내린 지난 2월 15일 교통대란으로 여자프로농구 선수들이 경기 시작 직전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방송 중계시간에 맞추려고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결승전임에도 불구하고 경기수준이 형편없이 낮아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스포츠 이벤트의 두 주역은 선수와 유료관중이다. 특히 경기장에서 함성을 지르는 열성 유료관중은 사실상의 주연이다. TV로 시청하는 팬의 숫자가 훨씬 많기는 하나 중계시간을 이유로 유료관중과 선수를 갈팡질팡하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프로그램이 방송국 사정상 바뀔 수 있다' 는 단서는 재난보도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방송사가 9시에 뉴스, 10시에 드라마 하는 식으로 프로를 편성하듯 경기도 주말엔 몇시, 주중엔 몇시 등으로 경기시간을 정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정희윤 <월간 '스포츠 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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