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다치지 않는 수밖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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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편이 제대로 회복할 수 있을지, 앞으로 생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캄캄해요. 아이들 때문에 태연한 척은 하고 있지만…. "

서울 홍제동 화재 때의 부상으로 서울 중앙대 용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이승기(38)소방관의 아내 장혜정(35)씨. 6명의 소방관이 희생된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남편이 고맙긴 하지만 근심이 크다. 7일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시민의 목숨을 구하다 다쳐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우. 참사 이후 기자가 만난 소방관들이 한결같이 원망하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박봉인데 부상이라도 당하면 삼중(三重)의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화곡동 음식점 화재 현장에서 화상을 입어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중인 소방관 정경일(35)씨의 처지를 보면 그들의 말에 이해가 간다. 鄭씨는 지금까지 들어간 치료비 2천2백60만원 중 3백37만원을 자비로 냈다. 화상 때문에 받은 인조피부 이식 수술과 특진비 등은 공무상 요양비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곧 받게 될 3차 수술비 등 추가로 들어갈 4백50만원 역시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부상 직전까지 2백만원이던 월급은 각종 수당이 끊어지면서 1백25만원으로 줄어든 상태.

"몸도 마음도 모두 절망적" 이라며 그는 얼굴을 감쌌다. 병원측은 다른 환자들의 감염을 우려해 화상 환자에게 1인실을 권한다. 하지만 아주 심한 화상이 아니면 4인 이상 병실 입원비와의 차액은 소방관 본인의 부담이다.

피해 보상절차도 복잡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보상을 신청하면 승인이 날 때까지 보통 14일을 기다려야 한다. 승인이 늦어지면 스스로 병원비를 물어야 하고, 어떨 때는 3~4개월 뒤에나 돌려받는다. 그나마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기간은 2년뿐. 그 뒤에는 규정에 따라 옷을 벗어야 한다. 그럴 경우 모든 진료비가 본인 부담이 되는 건 물론이다.

일선 소방관들은 "군인들은 유사시의 전쟁을 대비하지만, 소방관들은 하루하루 전쟁을 치른다" 고 하소연한다. 남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소방관들. 그러나 사고 이후를 고민하다 혹 인명구조를 망설이게 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모든 시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성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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