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교생들 서대문형무소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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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관순 누나를 아세요?" "하이, 시테 이마스(네, 알고 있습니다). "

6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역사관(http://ns.seodaemun.seoul.kr/mun/mun500.htm). 귀를 덮는 덥수룩한 머리에 교복을 입은 일본 고등학생 1백20명이 숨을 죽인 채 구경하고 있다.

천장 높이가 1m50㎝에 불과한 지하 감옥과 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팔을 자르는 장면 앞에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믿기 어렵다" "스미마센, 스미마센(미안하다, 미안하다)" 을 연발하면서도 안내인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학교에서 배우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럼 한국 사람은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혹은 "일본인을 싫어하느냐" 는 질문이 이어졌다.

역사적 배경을 안내인이 설명하자 학생들은 노트를 꺼내 깨알같은 글씨로 일일이 받아 적었다. 보통 1시간30분짜리 관람코스지만 이날은 3시간이나 걸렸다. 학생들의 질문이 거듭되는 데다 중간중간 토론도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곳을 찾은 학생들은 도쿄(東京)의 세이소쿠(正則)고등학교 학생들. 이 학교 2학년생들은 7년째 '평화학습 여행' 이란 테마로 수학여행차 한국을 찾고 있다. 1994년 사회과목을 맡았던 지카쓰 게이시 선생이 한국에 관광 왔다가 한.일 관계의 역사적 사실을 접하고선 충격을 받고 수학여행을 주선한 것.

학생들이 뜻밖에 '유관순' 을 알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원폭 피폭지인 나가사키(長崎)에서 출발한 3백21명의 학생들은 3개조로 나눠 3박4일간 서대문형무소와 종로 탑골공원, 천안 독립기념관과 통일전망대 등을 둘러본다.

전시장을 돌아본 후지키 오스케(18)는 "이런 역사도 중학교에선 못배웠고 세이소쿠 고등학교에 들어와 알게 됐다" 며 "일본인들이 상상도 못했던 일을 저지른 사실을 알고 당혹스럽다" 고 말했다. 곁에 있던 사카시타 고이치(33)교사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와 제출하는 리포트를 보면 학생들 대부분이 타인의 고통과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스즈키 아키오 교장은 일본 우익세력에 의한 교과서 왜곡 문제를 거론하며 "학생들이 평화의 소중함을 간직하도록 하기 위해 이곳을 계속 찾겠다" 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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