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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아인슈타인의 사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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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과학사를 연구하는 나는 큰 족적을 남긴 과학자들의 사생활에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마치 조각이 모자라는 퍼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느낌을 주는 대표적인 과학자가 아인슈타인이다. 특수 상대론과 일반 상대론을 제창한 그는 각국의 설문조사에서 지난 천년을 통틀어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혔고, 1999년에는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20세기의 인물로 선정됐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역학을 대체하는 새 물리학을 제창했고, 시공간과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꾸면서 20세기의 세계관을 만들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핵폭탄에 반대했고 자본주의와 전체주의를 모두 비판하면서 세계평화를 제창했던 평화운동의 기수이기도 했다.

그의 사생활은 1987년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가 아인슈타인 전집 제1권을 발간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실린 아인슈타인과 그의 애인 밀레바 마리치 사이의 연애편지들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직장을 잡지 못하고 불안해하면서 동시에 세계 물리학계를 재편하겠다는 꿈을 키우던 한 젊은이가 멀리 떨어져 있는 애인의 사랑을 갈구하고 이에 탐닉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스위스 특허국에 직장을 잡고 이 둘의 사랑은 결혼으로 결실을 보았지만, 이들의 결혼생활은 그의 업적이 학계의 인정을 받으면서 급속하게 냉각됐다. 아인슈타인은 가족을 방기한 채 자신의 먼 친척인 엘자와 사랑에 빠지고, 동시에 그녀의 딸에게도 몰래 청혼하는 이해하기 힘든 사랑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엘자와 불륜을 범하고 이혼을 위해 마리치와 다투던 시기에 그는 우주에 대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이론인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힘겨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엘자와의 결혼도 성공적이지 못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 '스타' 가 된 아인슈타인은 다시 다른 여인들의 사랑을 구했고 또 동시에 많은 여인들의 구애 대상이 됐다. 역시 세계적 스타였던 마릴린 먼로가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은 남성의 목록에 아인슈타인이 들어 있었고, 그가 실제로 마릴린 먼로에게 연애편지를 보내서 구애를 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여성편력보다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던 것은, 그가 마리치와 연애를 하던 20대 초반에 딸 리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87년 편지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아인슈타인과 마리치의 가족 일부만이 알고 있던 비밀이었다.

전집을 출판했던 편집자는 총력을 다해 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그녀의 행방은커녕 사진 한장 찾아내지도 못했다. 과학사학자들은 당시 직장이 없던 아인슈타인과 마리치가 딸을 입양시켰을 것이라고 잠정 결론지었지만, 최근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는 이들의 딸이 저능아였고 부모의 방기 속에 두살을 넘기기 전에 외가에서 열병으로 죽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는 아무런 사료의 뒷받침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의 애정 편력이나 불행한 가정생활이 그의 과학적 창조성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특수 상대론, 일반 상대론과 같은 그의 창조적 업적과 그의 사생활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영역인가? 아니면 그의 '애정 행각' 은 남들이 생각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우주의 신비를 탐험하던 외로운 그가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취하던 방편이었을까? 아니면 그는 한쪽으로는 천년에 한번 날까말까한 천재였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상처받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을까?

지금은 이런 문제에 확답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 아인슈타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사료는 아직 미공개로 남아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헤브루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인 이 미공개 사료들이 2006년에 공개되면 그 때 우리는, 비록 그의 창조성의 뿌리에 도달하지는 못할지언정, 아인슈타인이라는 한 자연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홍성욱 <토론토대 교수.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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