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어떻게 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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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법원(http://www.scourt.go.kr)이 마련한 '새 민사사건 관리 모델' 이 정착되면 우리 민사법정에서도 미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법정공방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정 안 좌석배치도 바뀌어 원고와 피고는 변호사와 함께 앉아 자신의 주장을 판사에게 펼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변호사에게 사건을 위임한 원.피고는 방청석에 앉아서 판사와 변호사의 움직임을 지켜볼 뿐이었다.

새로운 모델을 적용할 경우 현재 변호사 등 소송 대리인이나 당사자가 1심에서 평균 13회 법정에 출석하고 판결선고까지 17개월이 걸리던 사건들이 2~3차례만 참석해 1개월 안에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모의실험 결과가 나왔다. 민사재판에서 법원과 소송 당사자 모두가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 재판구조' 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 도입 배경〓심할 경우 판결선고까지 몇년씩 걸리는 민사재판 운영 전반에 대한 소송 당사자들의 불만이 팽배한 것이 대법원이 신모델 도입을 서두른 배경이다.

또 국회에 계류 중인 민사소송법 개정안의 시행에 대비하는 뜻도 있다.

◇ 새로운 재판방식〓기존의 재판절차는 소장 접수 후 30일 이내에 답변서가 제출되면 기타 서면증거 제출과 법정진술이 이뤄진 뒤 사건 접수순으로 재판 날짜가 잡혀 진행됐다.

그러나 새 제도의 시행으로 사건의 성격에 따라 간단한 사건은 곧바로 재판을 열고, 다툼이 치열한 사건은 서면공방과 법정공방의 두 단계를 거치는 등 신중하게 처리된다.

법원은 현재 합의사건의 27%, 단독사건의 81%를 차지하고 있는 자백이나 공시 송달로 처리되는 간단한 사건이 신속 처리돼 다른 재판까지 늘어지던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사건도 정식 재판날짜가 잡힐 때까지 대기해야 했다.

다툼이 있는 사건은 서면공방을 통해 쟁점을 미리 정리하고 증인신문 외의 모든 증거 조사를 마칠 계획이다. 굳이 법정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절차는 법정 밖에서 모두 끝낸다는 것이다.

다음엔 법정 구두공방이 이어진다. 먼저 쟁점정리 재판에서는 쟁점을 정리, 확인하고 당사자에게 직접 변론 기회를 준다.

두번째 집중 증거조사 재판에서는 증인과 당사자들을 하루에 모두 참석시켜 증인간.당사자간 대질신문 등을 진행한다. 그동안은 증인 신문이 여러차례 열려 재판 지연요인이 돼왔다.

이 때 변호사의 변론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소송 당사자가 자신의 주장을 법관 앞에서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 문제점〓법원은 감정서류나 사실조회 등 회신이 필요한 절차 등에서 국가 및 공공기관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춰야 한다. 부동산 감정가 의뢰 등에 6개월 이상 걸리는 것 같은 관행이 계속될 경우 재판의 신속한 진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는 당사자나 증인에 대해서는 구인 또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강력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소송 관련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으면 신속한 재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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