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분식회계 '대사면' 필요한가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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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분식회계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안은 분식회계 근절을 위한 실효성있는 대책이 될 수 없을 뿐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는 발상이다.

분식회계는 기업의 부실을 은폐함으로써 증권시장을 교란하고, 신용을 붕괴시키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범죄행위가 사회에 주는 피해를 따져보지도 않고, 무차별적으로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은 초법적 발상이다.

또 분식회계를 통해 투자자들과 채권자들에게 피해를 준 기업에 대해 형사상 면죄부를 준다면 이미 기소돼 있는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관련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생긴다.

설사 형사책임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 해도 기업 스스로 과거의 분식회계를 자인하고 이를 재무제표에 반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조치의 실효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분식결산 사실이 공표될 경우에는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관계없이 주가가 하락할 것이다. 또 투자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크다.

면죄부에 관한 이야기가 회계 감독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원 관계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분식회계의 근절을 위한 근본 대책은 세우지 않은 채 자신의 권한 밖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 '깜짝 아이디어' 만 내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내 기업 사이에 분식회계가 만연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분식회계를 할 때 얻는 이익이 그로 인해 치러야 하는 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식회계를 근절하는 방법도 분명하다. 분식회계가 적발될 확률을 높이고, 일단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 있는 기업의 내부자가 감독기관이나 언론기관 등에 이를 제보하는 경우 그 제보자의 신분을 보장하는 내부 고발자 보호규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분식회계에 대해 투자자들의 집단소송도 허용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을 만들지 않고 분식회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방안이 논의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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