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통신] 게이트볼 즐기는 분당 주민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어머, 저걸 어째. "

"이제 7번공만 넣으면 역전이야. "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분당 신도시 황새울공원에는 10여명이 모여 게이트볼을 치고 있었다. 70대 전후로 보이는 이들의 경기 모습은 젊은이 못지 않았다. 선수들은 1~10번까지 번호가 씌어진 재킷을 입고 망치 모양의 긴 스틱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또 상대방이 공을 칠 때마다 같은 편 선수에게 귀엣말을 하며 작전을 짜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역전에 역전이 거듭되고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모습에 관전의 재미가 더했다.

게이트볼이 분당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있다. 우선 게이트볼 구장이 다른 도시에 비해 유난히 많다. 황새울공원을 비롯, 중앙공원과 구미동의 머내공원.서현동 시범단지 아파트 등 모두 일곱군데에 게이트볼 구장이 마련돼 있다.

이중 네곳은 구청에서, 나머지 세곳은 해당 아파트에서 운영한다. 게다가 소득수준이 높아 여가 활용에 대한 주민들의 욕구도 크다.

하지만 7년 전만 해도 게이트볼 인구는 미미했다. 분당 게이트볼협회의 천세준(69)총무는 "1994년 협회가 만들어지기 전까진 분당의 게이트볼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다" 고 말했다.

"한번은 분당에 사는 퇴역 군인 10여명이 공원에서 게이트볼을 친다고 해서 보러 갔죠. 그런데 게임 규칙도 모른 채 공만 퉁기고 있더라고요. "

협회가 발족되고 흩어져 있던 프로급들이 모여들면서 분당은 게이트볼의 요지가 됐다. 협회가 결성되자마자 성남시장기배를 비롯해 각종 시.도대항 및 전국대회의 우승을 휩쓸었다. 황새울공원의 협회 사무실에 전시된 우승 트로피가 20여개에 이른다.

경력 10년째인 강길자(57.여.분당구 분당동)씨는 "경기에 몰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1만보를 걷게 된다" 며 "게이트볼만큼 매력적인 운동이 없다" 고 말했다.

우선 남녀노소는 물론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스포츠라는 것. 실제 3대가 참가하는 대회 종목도 있다.

"경기 내내 걸어다니며 다음 타구를 구상해야 하기 때문에 치매예방에도 탁월하죠. " 비용도 별로 들지 않는다. 나무를 압축해 만든 스틱(10만원대)만 구입하면 된다. 스틱은 3단으로 분리하면 작은 손가방에 쏙 들어가 휴대가 간편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중풍 환자도 게이트볼을 시작하곤 거뜬하게 걸어다니는가 하면, 디스크 수술을 받은 한 회원은 허리를 굽히지 못하다가 이젠 협회 선수로 뛰고 있다는 것.

심장수술을 받았던 金모(68)회원은 "의사의 권유로 게이트볼을 시작했는데 이제 뜀박질도 문제없다" 고 말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분당의 게이트볼 인구는 현재 3백여명. 동호인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실내 구장이 아직 없다.

분당 게이트볼협회 이상복 회장은 "눈이나 비가 오면 땅이 젖어 며칠씩 경기를 치를 수 없다" 며 "전천후 구장이 설치돼 날씨에 관계없이 운동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