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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이산상봉] 북 서희숙씨 뜻밖의 시댁상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이번 3차 상봉에서 예정에 없었던 1백1번째 상봉이 기적적으로 이뤄졌다.

북측 상봉단의 서희숙(69)씨는 지난달 27일 서울 롯데월드호텔 개별 상봉장에서 이미 사망한 남편의 동생 조남희(66)씨 등 시댁 식구들과 감격적인 첫 인사를 나눴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50년 좌익 사상에 빠진 친구를 따라 월북한 희숙씨는 의용군으로 홀로 월북해온 조남식(92년 사망)씨와 61년 결혼해 세 남매를 두었다.

언니 혜석(72), 여동생 정석(63)씨 등 친자매를 만나러 온 희숙씨는 상봉 첫날인 지난달 26일 친정 식구들에게 "남한 출신인 남편의 가족들을 찾아줄 수 있느냐" 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희숙씨가 시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시동생 조남희씨의 이름과 남편 조씨의 고향주소(충북 옥천군 동의면 남죽리)뿐이었다.

마치 '서울에서 金서방 찾기' 같던 희숙씨의 부탁은 그러나 극적으로 이뤄졌다.

언니의 막내사위 박영관(38.삼성건설 근무)씨가 마침 남편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 동의면 경부고속철도 건설현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희숙씨는 이 기막힌 우연을 하늘에 있는 남편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위 朴씨는 면사무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26일 오후 9시쯤 조남희씨의 연락처를 확인해 냈다.

조씨는 형 남식씨가 죽은 줄 알고 10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 왔다고 한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2차 이산가족 상봉 때 신청을 했지만 탈락해 형님 찾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조씨는 연락을 받자마자 뜬 눈으로 밤을 지샌 뒤 27일 오전 4시 집을 나섰다.

생전 처음 볼 형수에게 줄 선물은 미처 준비하지 못해 집에 있던 새 내의 한벌과 족보, 가족 사진첩을 가지고 상봉장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해 희숙씨는 40년 전 결혼한 남편의 동생을 만났다.

모두 10시간밖에 안돼 자신들의 회포를 푸는 데도 부족했지만 희숙씨의 친정식구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상봉장 출입카드를 조남희씨에게 빌려줬다.

"어머니는 형이 행방불명된 뒤 화병으로 54년 돌아가시고 아버지(88년 사망)는 형의 사진을 앞에 놓고 울다 목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지요. "

시동생이 전해준 시부모 소식에 며느리는 눈물을 쏟았다.

"형님은 북에서 성공한 학자였다" 는 형수의 말에 조씨는 "동네에서 신동 소리를 듣던 큰형이었다" 며 목놓아 울었다.

희숙씨는 남편의 독사진,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조씨에게 주었다. 조씨는 족보와 형의 어릴 적 사진을 "큰집에서 갖고 계셔야죠" 하며 형수에게 주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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