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이산상봉 평양] '휠체어 상봉' 모자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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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을 막론하고 이산가족들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며 서로의 얼굴을 매만진 뒤에야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지난 세월을 풀어나갔다.

○…납북자 성경희씨에 이은 국군포로 출신들의 분단 반세기 만의 만남 때문에 고려호텔 상봉장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됐다.

남녘 동생 손준호(67)씨와 북녘 형 원호(75)씨는 "반갑습니다" 라는 어색한 인사만 되풀이하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원호씨는 한국전쟁 기간 중 국군 국방경비대에 근무했던 국군포로 출신.

전쟁이 끝난 뒤 전사통지서가 날아와 준호씨 등 가족은 원호씨의 제사를 지내다 지난해 국방부가 국군포로에 원호씨가 포함돼 있음을 밝혀와 서둘러 이산가족 교환 방문을 신청해 상봉이 이뤄진 것이다.

북한에서 재혼한 뒤 현재 탄광 교관으로 일하고 있는 원호씨는 "남쪽 형수는 수절한 채 혼자 살고 있다" 는 동생의 말에 또다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또 김재조(65)씨도 국군포로 출신의 형 재덕(69)씨와 감격어린 상봉을 했다.

한편 북한의 조선중앙TV는 이날 저녁 뉴스에서 손원호.김재덕씨가 남쪽의 동생을 만난 소식을 화면과 함께 보도했다.

중앙TV는 "지난 전쟁시기 공화국으로 의거한 손원호와 김재덕은 남에서 온 동생에게 국군살이를 박차고 인민군대에 입대해 정의의 총을 잡았던 때를 회고하면서 민족의 일원으로서 자기가 걸어온 인생길은 참으로 옳았다고 이야기했다" 고 전했다.

○… "어머니, 인수 아버지 왔어요…. "

휠체어를 탄 아들 이후성(76)씨가 50년 만에 "어머니" 를 목놓아 부를 때 어머니 장오목(94)씨는 먼 곳만 쳐다보았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휠체어에 몸을 싣고 힘겹게 상봉장을 찾았지만 가는 귀가 먹어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4 후퇴 때 "사흘 만에 돌아오겠다" 며 집을 떠난 아들이 70을 훌쩍 넘겨 중풍에 걸린 채 휠체어를 타고 어머니 앞에 돌아온 것이다.

"니가 인수 애비냐. "

아들의 울음에 귀가 뚫린 어머니는 치매로 10년 동안 닫았던 말문을 열었지만 두 사람은 곧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손을 마주잡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李씨는 바로 옆에 서 있던 아내를 쳐다보고 "미안하다" 며 고개를 떨궜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 인수(55)씨를 키우며 50년 세월을 수절한 아내 김선녀(74)씨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죄송해요, 어머니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만 있어 주세요" 라는 칠순 아들의 말에 구순 노모는 또다시 말문을 닫고 말았다.

○… "저 양록이에요. 알아보시겠어요. "

북쪽의 막내 아들(55)을 51년 만에 만난 손사정(90)할아버지는 치매 때문에 아들이 연신 팔을 흔들어도 멍하니 하늘만 쳐다봤다. 아들이 연신 말을 걸자 가끔 정신을 차린 듯 눈물을 글썽이다 또다시 먼 허공만 둘러봤다. 보다 못한 남북측 관계자 10여명이 몰려와 아들을 대신해 孫할아버지에게 물어도 말을 못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51년 만에 아내와 아들을 만난다는 기쁨에 들떴던 김치문(79)씨는 아내 김계옥(70)씨가 끝내 상봉장에 나타나지 않자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헤어질 당시 생후 9개월이던 아들 용균(51)씨가 "아파서 못 나왔다" 고 말했지만 재혼한 게 마음에 걸려 못 나온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시 재혼한 金씨는 아들이 "위대한 장군님이 안 계셨으면 상봉은 생각도 못할 일" 이라고 말하자 고개만 끄덕였다.

○… "아버지 저는 조병칠입니다…. "

어릴적 장티푸스를 앓아 말을 못하게 된 북의 아들은 50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쪽지 위에 글을 써내려갔다.

"헤어질 때 서너살 밖에 안돼 얼굴 윤곽마저 흐려지는 것 같아 애태웠는데…. "

전쟁통에 아들 조병칠(57)씨를 고향인 평북 영변에 두고 남하했던 조구연(90)씨는 아들이 전달해 준 쪽지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평양〓공동취재단,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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