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조정권 '산정묘지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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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의 일각을 그리워하리.

- 조정권(1949~) '산정묘지(山頂墓地)1'

이 시인의 시를 따라가기에 내 숨은 한참 모자란다. 높은 겨울 산을 오르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를 응시하는 단호함과 침묵, 그리고 천상의 누각을 꿈꾸는 숭고한 시 정신은 황폐해지고 천박해진 우리들의 삶을 질타하고 위무한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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