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월드컵,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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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그때는 물도 못 마시게 했으니 할 말 다 했죠.” 갈증을 느끼기 전에 미리 수분을 보충해야 경기력이 향상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스포츠 상식이다. 하지만 1986년에는 달랐다. 김정남 86월드컵 감독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배가 출렁대면 훈련하는 데 방해된다고 물을 못 마시게 했다. 훈련이 끝난 다음에 한꺼번에 물을 마시게 했다. 실전에서는 어차피 물을 맘대로 마실 수 없으니 그래야 실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86·90월드컵에 잇따라 출전한 최순호 강원 FC 감독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물을 마시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다.

코칭 스태프도 단출했다. 김정남 감독에 김호곤 코치가 전부였다. 없어선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골키퍼 코치조차 없었다. 김 코치가 골키퍼 훈련도 맡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표팀의 가장 취약한 포지션이 골키퍼였던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의료진도 없었다. 김 감독은 “차범근이 소속 팀에 사정을 이야기해서 물리치료사를 한 명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멕시코 월드컵 한국-아르헨티나전에서 허정무(왼쪽)가 마라도나 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중앙포토]

김 감독은 “지금이야 외국을 제 집 드나들듯 하고, 정보 채널도 다양하지만 그때는 참고할 만한 게 거의 없었다”고 했다. 월드컵에서 만날 상대국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김 감독은 “지금은 외국인을 고용해 상대 전력을 분석하기도 한다. 그때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대회를 앞두고 아르헨티나와 불가리아의 경기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1개씩 간신히 구해서 본 기억이 난다. 그나마 축구협회의 배려로 대회를 수개월 앞두고 이탈리아와 서독의 평가전을 보러 갈 기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아르헨티나전은 사실 마라도나 1명만 알고 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 다른 월드컵 상대국인 이탈리아와 불가리아는 월드컵에서 두 팀이 맞대결하는 것을 보고 어떤 전술을 쓸지 최종 점검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장비 담당이 따로 있지만 그때는 유니폼 관리도 직접 했다. 양말도 선수들이 알아서 빨았다. 다만 월드컵에서는 호텔의 세탁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내가 이야기한 게 결코 투정으로 들리지 않기 바란다. 그저 그 시절이 그랬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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