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양해' 김정일 메시지 뭘 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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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지난해 10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한 조명록(趙明祿)총정치국장을 통해 '주한미군 주둔을 양해할 수 있다' 는 취지의 메시지를 미국측에 전달한 것은 대미(對美)관계 개선에 대한 金위원장의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에서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의 언급으로 뒤늦게 드러난 이같은 사실은 향후 북.미 관계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朴장관은 20일 자신의 발언에 대해 "조명록 특사가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대미관계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말이지 '주둔 용인' 쪽에 너무 무게를 실어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 신중한 해석을 언론에 당부했다.

그렇지만 발언이 나온 정황이나 취지를 볼 때 의미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朴장관은 국회 상임위에서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의원이 "6.15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도 주한미군 주둔에 대해 양해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김정일 입으로 그런 얘기를 한 것은 한 번도 못들었다" 고 지적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1992년에 김용순 비서를 특사로 보내서…" 라고 답했다.

金의원이 재차 "10년 전의 얘기 아니냐" 고 목소리를 높이자 "얼마 전에 보내서 이미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답변을 보냈다" 고 말해 趙특사를 통한 메시지 전달사실을 공개한 것.

북한은 92년 2월 뉴욕에서 열린 김용순(金容淳)당시 당 국제부장과 캔터 국무차관간의 첫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주한미군에 대해 완화된 입장을 최초로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몇 차례 주한미군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크게 무게가 실리지 못했다.

하지만 趙특사는 지난해 방미 때 "김정일 동지는 조.미 관계를 평화와 친선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중대 결단을 내릴 것" 이라고 공언함으로써 주한미군 주둔을 포함한 현안을 포괄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적이 있다.

다만 부시 미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이같은 시각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주한미군 주둔 양해' 에 관련된 북한 당국자의 발표는 아직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주한미군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보인 것은 분명하다" 며 "이런 태도는 2차 남북 정상회담이나 국방장관 회담 등 당국간 대화채널을 통해 곧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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