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개혁 어떻게 할것인가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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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다수 성인 팬을 위한 음악은 소외되고 10대 청소년을 겨냥한 댄스그룹과 극소수 발라드 가수들만 주가를 올린다. 노래보다는 개그를 잘하는 가수가 더 유명한 어이없는 현실이 이제 자연스럽다. 대중음악이 지상파 방송사의 오락프로그램을 위한 보조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몇몇 대형 음반사.기획사.지상파 방송사의 카르텔을 연상시키는 구조에 의해 왜곡된 대중음악의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대중음악 개혁,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진단한다.

① 방송사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해야

② 음반 유통구조가 문제다

③ 가요.공연 기획사 현대화해야

한국 대중음악이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말하면 상당수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른다.

H.O.T ·조성모 등 1백만장,2백만장을 거뜬히 팔았다는 가수들이 스포츠신문을 장식하고,TV만 켜면 많은 가수들이 행복에 겨워하는 표정을 볼 수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 보면 사정은 다르다.한때 4천5백억원을 넘었던 연간 음반 판매량은 90년대 후반들어 급격히 떨어져 지난해에도 3천억원선을 회복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수십만장 이상 음반이 팔리는 가수들은 거의 전부 20대 이하 여성 팬들에게 호소력을 지니는 몇몇 댄스 그룹 혹은 발라드 가수뿐이다.

요컨대 한 가요계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면 “중 ·고교에 다니는 언니도 사고 동생도 사서 한 집에 같은 CD가 두세장씩 있는”불과 3∼4명(팀)의 가수들만 음반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골고루 발전하지도,음반 시장 전체 규모가 커지지도 않고 있다.

대중음악 퇴보의 요인은 전근대적 유통구조,상업성으로 치닫는 기획사 등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의 음악평론가 등 전문가들은 지상파 방송사,구체적으로 말하면 방송사의 가요순위프로그램을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성공회대 김창남(신문방송학)교수는 “대중음악이 독립성을 상실하고 방송의 소도구로 전락했다. 세계 어느 선진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요순위프로그램은 방송사가 그런 권력을 행사하는 핵심 고리”라고 지적했다.

왜 지상파 방송사들은 가요순위프로그램을 계속 내보내고,대부분의 가수들은 그것에 목을 매는 것일까.이에 대한 답은 ‘가요순위프로그램이 왜 문제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과 같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가요순위프로그램이 시장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시장을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음반이 많이 팔려서 1위를 하는 게 아니라 1위 자리에 오르면 음반이 많이 팔리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순위 매김의 불공정성 및 자의성과 관련된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들은 대부분 음반판매량 ·방송회수 ·전화자동응답시스팀(ARS)에 의한 팬투표 등을 반영해 순위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투명하지 못한 음반유통구조 탓에 음반,특히 최신 음반의 판매량에 대한 신뢰성은 전혀 확보되지 못한 상태다.

방송회수도 역으로 방송사가 얼마나 많이 내보내느냐에 달려있다.ARS집계도 몇몇 10대 스타들의 팬클럽 회원들이 전화공세를 펴기때문에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참고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빌보드지는 투명하게 공개되는 전국 소매점의 총 음반판매량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있다.지상파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수들의 등위를 매기는 일은 물론 없다.

가요순위프로그램의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다.방송 3사 모두 약 9%대에 머물고 있다.그럼에도 방송사들이 가요순위프로그램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가요순위프로그램이 가수들을 장악하는 핵심 고리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가수들이 출연해 노래가 아니라 개그 등 갖가지 쇼를 하는 오락프로그램과도 연결돼 있다.

가요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이런 저런 오락프로그램에 불려다니는 게 싫을 때가 많다.얼굴을 알리기 위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방송사와의 ‘친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털어놓았다.

방송사로서는 드라마·교양프로그램에 비해 훨씬 적은 제작비로도 더 많은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오락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하고,이를 위해서는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 쉬운 가수의 출연이 꼭 필요하다.가요순위프로그램은 그런 캐스팅을 위한 주요한 무기가 되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1백만장 가까운 앨범이 팔렸지만 지상파 방송사의 각종 ‘제약’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철저히 제외된 서태지의 경우를 보면 확실해진다.

“현실적으로 청소년들이 보고 싶어하는 가수들을 많이 출연시키고 1등을 주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방송사들의 항변이 무색해진다.

민언련 방송모니터 위원회 이송지혜 간사는 “대중음악을 왜곡하는 방송사의 집약적인 모순체인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 운동을 소비자 ·시청자운동의 일환으로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김경진씨는 "출연자 거의 전원이 립싱크를 하는 현재의 가요순우 프로그램을 없애고, 순위와 무관하게 역량 있는 뮤지션이 실제 연구와 노래를 하는 순수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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