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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상상력 빛 발한 영화 '키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만약' 이란 가정에는 아슬아슬하긴 해도 즐거운 상상이 숨어 있다.

'만약' 은 옴쭉달싹못할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는 언어판 타임머신이다.

살면서 막연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하고 미래의 나를 알고 싶은 욕구도 느낀다.

그런데 여덟 살의 나와 마흔 살의 내가 어느날 직접 대면한다는 것은 그 상상만으로도 야릇하고 각별하다.

"3분 동안 시놉시스를 듣고 2분 만에 제작을 결정했다" 는 제작자 헌트 로우리의 말처럼 '키드' (17일 개봉)는 단박에 사람의 관심을 끄는 설정으로 출발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도 고루하지 않은 방식을 택한 할리우드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유명인의 이미지 관리 컨설턴트로 성공한 러스(브루스 윌리스)는 불혹을 앞둔 이혼남. 어느날 혼자 사는 그의 집에 이름 모를 꼬마가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러스는 유령이나 환영을 본 것처럼 정신병원을 찾아가 법석을 떨지만 며칠 후 꼬마는 다시 나타나 아예 거실에서 팝콘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말투나 버릇, 몸에 생긴 흉터까지 똑같은 꼬마 러스티(스펜서 브레슬린)가 바로 자신이란 것을 깨달은 러스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지만 지워버리고 싶었던 유년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러스티를 통해 자신이 속물로 변해버린 사실을 깨닫는 러스. 마흔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러스와 러스티는 32년전 초등학교 시절 놀이터로 추억을 찾아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처럼 상상력에 의존한 이야기는 감상적이게 마련이고 '만약' 으로 시작한 만큼 그 결말 또한 싱거울 수 있다.

샌드라 블록의 '당신이 잠든 사이' 에서 기발하면서도 독특한 감성을 선보였던 존 터틀타웁 감독은 러스와 러스티를 사사건건 의견이 엇갈리는 충돌관계로 설정한다.

러스에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이 악몽처럼 느껴지고, 러스트에겐 속물로 변해버린 자신의 미래가 싫기만 한 것.

이를 통해 감독은 막연한 감성에 호소하는 대신 서로를 쏘아붙이는 대사에서 현실성을 확보하고 그 사이 삽입한 자연스런 코미디로 관객층을 넓힌다.

'다이하드' 시리즈로 액션 배우로 이미지를 굳히는가 싶더니 '식스 센스' '언브레이커블' 에선 깊은 내면 연기를 보인 브루스 윌리스.

로맨틱 코미디 '스토리 오브 어스' 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출연하며 연기의 폭을 한층 넓혔다.

2천대 1의 경쟁을 뚫고 '키드' 로 데뷔한 여덟 살 소년 스펜서 브레슬린은 익살스런 꼬마 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낸다.

러스와 러스티는 32년 전으로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무렵, 소형 비행기가 놓인 길가에서 한 백발 노인을 만난다.

그는 다름 아닌 30년 후의 러스 자신. 아들 손자 3대도 아닌 꼬마.장년.노인 러스가 함께 모인 자리란….

노인 러스는 "너희가 묻고 싶은 게 많겠지. 그건 앞으로 30년간 잘 생각해야 할 숙제" 라며 돌아서고 그와 함께 러스가 평소 함께 했으면 하던 아내와 강아지 한 마리가 총총히 뒤를 따른다.

신경쇠약에 걸려 고생하던 러스는 시간 여행 후 과거도 찾고 미래도 내다본 행복한 남자가 됐다.

신용호 기자

:30년 전의 내가 지금 나에게 "도대체 이 모습이 뭐냐" 고 다그친다면? "왜 이렇게 속물이 됐느냐" 고 항의한다면? 한번 정도 곱씹어봐도 괜찮을 고민거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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