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8.8 강진] 도시 잠든 새벽 급습…“수도 산티아고도 젤리처럼 출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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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지진으로 인한 지진해일 이 28일 오후 1시쯤 일본 열도에 상륙했다. 일본 북부 미야기현 시치가하마 의 한 항구에서 배가 파도에 쓸려 솟구치고 있다. [시치가하마 AP=연합뉴스]

새벽 3시34분에 습격한 규모 8.8의 강진은 지진에 익숙한 칠레 사람들마저 공포에 떨게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지진과 동시에 대부분 지역이 정전됐고 칠흑 같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밖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여진으로 집이 무너져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진앙에서 325㎞ 거리의 수도 산티아고에 있던 AFP 통신원은 “건물들이 마치 젤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휘청거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산티아고에선 종루 등 역사적 유적이 다수 파괴됐고 국립미술관도 심하게 손상됐다. 끊어진 고가도로 위로 차량이 위태롭게 매달렸다. 산티아고 공항은 창문이 깨지고 일부 천장이 무너지는 등 크게 파손돼 잠정적으로 3일간 폐쇄됐다. 지진 후엔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수퍼마켓과 주유소에 장사진을 이뤘다.

진앙에서 115㎞ 떨어진 칠레 제2의 도시 콘셉시온에선 200여 명이 머물던 15층 건물이 무너졌다. 당시 건물에 있다가 살아남은 페르난도 아바수아는 “8층에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 땅 위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소방 당국은 20여 명만을 구해냈다. 콘셉시온 북동쪽의 치얀에선 지진으로 교도소 건물에 불이 난 틈을 타 269명의 죄수가 탈출했다. 당국은 이 중 28명을 다시 붙잡았다고 밝혔다.

지진에 이어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왔다. 칠레 해안에서 700㎞ 떨어진 태평양 해상의 로빈슨 크루소 섬에 쓰나미가 덮쳐 5명이 죽고 11명이 실종됐다. 탈카우아노 등 칠레 해변 도시에도 최고 2m34㎝ 높이의 대형 쓰나미가 가옥과 차량을 쓸어갔다. 칠레 남부 해안의 일로카 시 주민들은 차오르는 바닷물을 피해 맨발로 산으로 올라갔다.

지진과 쓰나미가 쓸고 간 자리에선 식수 부족으로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 산티아고 인근 퀼리큐라 지역의 한 주민은 “한여름에 식수 공급이 늦어지면서 주민들이 점차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구호물자를 배급하는 트럭에 돌을 던지는 일도 있었다”고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이어 “전기가 배급제로 전환되면서 단전에 대한 두려움도 주민들 사이에 팽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8.8의 강진 이후에도 규모 5.0 이상의 여진이 50여 차례 칠레를 덮쳐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칠레 당국은 이번 사태로 2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150만 채의 가옥이 파손된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재난위험평가업체 EQECAT는 이에 따른 피해액을 150억~300억 달러로 추정했다. 칠레 국내총생산(GDP)의 10~15%에 해당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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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EU “즉각 돕겠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칠레 정부가 지원을 요청하면 구조와 구호 활동을 투입할 여력이 있다”며 도움을 줄 의사를 밝혔다. 유럽연합(EU)도 칠레에 300만 유로를 우선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옥스팜과 셸터박스 등 민간 구호단체들도 기술자와 구호 전문가를 칠레에 보내기로 했다. 미국 자선단체 ‘모바일 기빙 재단’은 영국·캐나다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5, 10달러를 기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단체는 아이티 지원기금 4100만 달러를 모은 바 있다. 세계은행도 전문가들을 재난 관리와 재건작업에 투입하는 등 지원에 나설 채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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