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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뎁, 괜히 ‘환상의 복식조’가 아니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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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 원작만큼이나 기묘한 상상력이 빛난다. 원작의 ‘원더랜드’는 붉은 여왕의 공포정치에 어둡게 물든 ‘언더랜드’로 바뀌었다. [한국 소니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제공]

늦은 감마저 든다. 감독 팀 버튼과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맞선이 이제야 성사됐다니. ‘가위손’ ‘배트맨’ ‘스위니 토드’ 등 손대는 작품마다 독특한 광채를 발하는 상상력으로 할리우드에서 ‘버튼스럽다(Burtoneque)’는 조어를 탄생시켰던 감독이 버튼 아닌가. 다층적 의미를 지닌 텍스트 덕분에 발표된 지 145년이 된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루이스 캐롤의 원작은 또 어떻고.

둘의 만남은 늦긴 했어도 역시나 평범치 않다. 4일 개봉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화팬이라면 한 번쯤은 맛봄직한 시각적 강렬함과 특유의 흡인력을 자랑한다. 제작비는 2억5000만 달러(약 2900억원). 요즘 전세계 영화의 키워드가 된 3D입체로 제작돼 이런 강점은 더욱 도드라진다.

◆3D ‘언더랜드’로 바뀐 이상한 나라=‘배트맨’에서도 그랬지만 버튼은 원작의 틀만 빌려오고 나머지 이야기는 깡그리 자신의 것으로 채운다. ‘배트맨’의 고담시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언더랜드는 완전히,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무대는 빅토리아 시대. 열아홉 살 소녀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는 귀족 자제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예스냐 노냐 대답을 해야 하는 찰나 회중시계를 지닌 흰 토끼가 나타나고, 이상한 나라로의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

그런데 어렸을 적 앨리스가 다녀온 곳은 ‘원더랜드’가 아니라 ‘언더랜드’였단다. 언더랜드는 꽃 향기 날리는 화사한 상상 속 나라가 아니다. 틈만 나면 “목을 쳐라!”를 외쳐대는 공포정치의 화신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과, 눈부시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의 소유자 하얀 여왕(앤 헤서웨이)이 으르렁대는 음울한 세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괴물 재버워키를 물리치고 언더랜드에 평화를 이뤄야 한다. 살짝 맛이 간 듯한 모자장수(조니 뎁) 일당이 앨리스를 돕는다.

앨리스가 “여자는 조신하게 시집이나 일찍 가는 게 좋다”는 시대의 요구와 불화하는 주인공으로 변신한 점이 이색적이다. 소극적인 소녀가 강인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달됐는가에 대해선 다소 의문스럽지만. ‘용기 있는 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메시지나 권선징악의 결말도 버튼스럽다기보다 할리우드 가족영화스럽다.

◆조니 뎁의 변신은 무죄=버튼의 매니어들은 아쉬울 테지만 이 영화에 펼쳐진 시각적 상상력의 보따리는 그런 흠을 잠시 잊을 수 있으리만치 매혹적이다. 무엇보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은 캐릭터의 향연이란…. 조니 뎁의 모자장수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충치를 드러내고 웃던 잭 스패로우를 봤을 때의 놀라움 이상이다. 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어 확대한 초록색 눈동자는 어릿광대마냥 우습기도 하면서 처연한 느낌이다.

모자 만드는 사람의 직업병인 수은중독 탓에 살짝 미쳐버린 이 캐릭터는 특수분장과 CG, 그리고 배우의 상상력의 결합체다. 버튼과 일곱 번째로 작품을 함께한 그의 모자장수는 직접 수채화로 그린 이미지가 바탕이 됐다. 영화 마지막, 그의 ‘으쓱쿵짝’ 춤을 절대로, 절대로 놓치지 마시길.

‘왕대그빡’ 붉은 여왕을 연기한 헬레나 본햄 카터의 개성도 둘째 가라면 서럽다. 버튼의 아내이기도 한 그는 세 시간 분장에 본래 크기보다 두 배 넘게 머리를 CG로 손대는 파격을 시도했다. 하도 소리를 많이 질러 촬영기간 내내 밤마다 목이 잠겼다는, 붉은 여왕의 호통 연기는 영화의 주요 웃음 포인트다. 원하는 대로 사라졌다 나타나는 체셔고양이, 짜리몽땅 쌍둥이 형제 트위들디와 트위들덤, 지혜로운 애벌레 압솔렘, 흉측한 괴물 밴더스내치 등 실제 배우와 디지털 배우가 골고루 섞인 조연들의 면면을 구경하는 재미도 짭짤하다. 개봉관 중 아이맥스관이 3개관(서울 용산·왕십리CGV, 전남 광주CGV) 포함돼 있다. ‘아바타’에 이은 ‘3D 아이맥스 관람’ 열기가 예상된다. 전체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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