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낭만파 클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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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한다. 이 교(敎)를 베푼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생명과 접촉하며 이들을 감화시킨다. "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신라시대 유학자 최치원(崔致遠)의 이런 글을 인용하며 풍류를 설명하고 있다.

유교.불교.도교의 내용을 모두 포괄하면서 인간은 물론 천지만물을 감화시키는 그윽한 도가 풍류라는 것이다.

천지만물과 사랑의 관계로 하나되어 살아가는 풍류객을 화랑이라 하며 그들은 그런 풍류를 익히기 위해 도의로써 서로 몸을 닦고, 노래와 춤으로써 서로 즐기며, 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법을 배웠다.

의식주라는 현실, 사회적 직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예술과 자연을 벗삼아 삶을 넉넉하게 살아가는 풍류적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살맛 나는 세상을 가꾸자' 며 일단의 문화.예술인들이 13일 '낭만파 클럽' 을 발족한다(본지 2월 9일자 48면). 12일 워싱턴.도쿄 등 세계 5개 주요도시에서는 인간지놈 지도를 완성했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인간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 이제 인간은 스스로의 생물학적 진화까지를 결정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런 시대에 훈훈한 정이 넘치는 인간 본위의 '낭만' 을 외치고 나온 것이다.

낭만주의 운동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영국에서 일어나 19세기 중반까지 유럽과 미국에 풍미한 지적이며 문화예술적인 운동. 이성과 지성.합리성에 경직된 신고전주의.계몽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상상력과 감성 및 주관에 의해 세계를 바라보려는 태도다.

인간의 심성을 믿으며 삼라만상과의 영적인 교감을 나누려는 낭만주의적 태도는 우리의 풍류와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낭만주의는 그 비규범성.비조직성.현실도피성 등으로 인해 현실을 중시하는 사실주의 운동 등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번에 발족되는 낭만파 클럽은 '차라리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따지지 않는다' 를 '행동 강령' 처럼 내세우고 있다.

거꾸로 보면 계산적 이해와 이러저러한 구분들이 세상을 더욱 각박하고 살 맛 안나게 만들고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낭만이나 풍류는 어찌보면 인간 개인적 자질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멋있는 품새인데 이런 운동이 조직적으로 일어나도록 하는 살맛 잃어가는 현실과 시대가 안타깝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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