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10시간] 만화 '오디션' 의 가상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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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권 당 평균 10만부 판매. 권당 3만부만 넘어도 히트작으로 통하는 좁은 국내 만화계에선 놀라운 기록이다.

그것도 독자층이 상대적으로 좁은 순정만화다. 천계영의 『오디션』(서울문화사). 만화잡지 『윙크』에 연재 중이며 현재 7권까지 나왔다.

『오디션』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흙 속에 묻힌 진주처럼 자신들의 음악적 재능을 모른 채 지내던 네 명의 소년이 우연히 발탁돼 전국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 가수로 데뷔한다는 내용이다.

영하의 추위가 이틀째 계속되던 지난 8일 '오디션' 재활용밴드 멤버들을 만났다. (만화의 주인공들이니까 물론 가상의 공간이다) 한번 들은 음악은 까먹지 않고 바로 악보에 옮길 수 있는 베이시스트 장달봉, 펑크든 힙합이든 천부적인 리듬감으로 풀어내는 드러머 류미끼, 손가락이 길고 손놀림이 잽싸 풍부한 감성의 건반 연주를 들려주는 국철, 그리고 폭발적 성량과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자 하이소프라노)의 음역을 넘나드는 '가성을 지닌 '보컬 황보래용 등이었다.

먼저 그들의 매니저인 송명자가 1백77㎝의 큰 키도 모자라 12㎝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 나타났다. 오디션을 개최한 음반사 송송기획 회장의 딸이다.

죽은 아버지가 십수년전 오다가다 마주친 네 명의 천재들을 찾아내 오디션에서 1등을 하게 해야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비운의 상속녀' 다.

(기자의 10시간은 일곱권의 만화책을 두 차례에 걸쳐 읽고 '오디션' 홈페이지(http://auditionn.com)에 접속, 약 1천 건에 달하는 팬들의 감상문을 체크하느라 순식간에 흘러갔다.

)

이 들은 아직 오디션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긴장과 흥분이 덜 풀린 상태였다. 우선 오디션 전과 후의 변화가 궁금했다. 송명자의 귀띔으론 이들은 처음부터 '음악 천재' 는 아니었다.

장달봉은 "중국집 종업원 중에 5년 전속계약 맺은 사람 봤느냐" 고 기자에게 대뜸 물었다. 전속계약? 중학교를 중퇴하고 마포의 한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던 그는 자장면을 기가 막히게 비벼주는 '비벼드려요' 서비스를 개발, 손님을 양떼구름처럼 몰고 다녔다.

류미끼는 고1 중퇴 후 백댄서를 했다. 외모에서 눈치챈 사람도 많겠지만 그는 백인 혼혈이다.

여성으로 오인받기 일쑤다.

멤버 중 전직이 가장 충격적인 인물은 국철이다. 소매치기. 성격도 말하는 걸 들어보면 무척 반항적이고 냉소적이다.

『캔디』의 테리우스를 닮은 이미지 덕분인지 지난해말 '오디션' 홈페이지에서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4명 중 1위를 차지했다(3천2백49명 중 43.8%의 압도적 지지다).

막내 황보래용은 '안쓰럽게도 '조울증을 앓고 있다. 자신이 외계의 별 레에서 온 베레베레베레라고 믿고 있다. 레에는 여자친구 몰레몰레몰레가 살고 있다나. 슬픔과 기쁨의 양극단을 오간다.

(그는 이날 가장 의상이 돋보였던 멤버였다. '상수동 계모임 친목회 기념' 이라고 쓰인 흰 타월을 목에 두르고 이태원 리어카에서 파는 눈알반지를 낀 그의 패션은 사이버펑크족이 모델이란다. 머리 색깔은 오렌지색. )

이들은 처음엔 음악의 '음' 자도 몰랐다.

"악기라면 피리는 불 줄 알아. 초등학교 때 배웠어" (장달봉)

"난 노래 잘하는 것 같은데 남들이 음치래" (황보래용)

"드럼 옆에서 춤 춰본 적은 있지" (류미끼)

"왜 내가 뭔가 할 줄 알아야 하지?" (국철)

이들 모두 "오디션이 없었다면 내가 음악을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 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디션에서 얻은 소중한 소득은 "음악을 하는 이유가 우리 자신이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는 것. 1차 본선에서 만난 청학동댕기즈가 들려준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라" 는 공자님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됐다.

박식한 황보래용이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고 즉각 풀이해준다.

'왜 내가 음악을 하는가 '하는 원초적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지 못한 채 스케줄과 인기에 질질 끌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숱한 10대 그룹들과 대비되는 성숙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이날 "5차 본선을 앞두고 있어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한다" 며 미안해했다. 섀도 창법(목소리를 두 갈래로 내는 창법)을 구사하는 티베트 출신 고승인 이노무시키와 대결하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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