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 진동계곡] 한국 최고의 원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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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금새라도 눈발을 뿌릴 듯 하늘이 낮게 내려 앉았다. 진동계곡을 찾아 들어가는 길은 폭설로 도로가 눈에 파묻혀 있었다. 30㎝는 족히 넘게 쌓인 눈길은 차바퀴가 깊게 골이 패어 승용차로 접근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어 보인다.

*** 우리나라 최고의 원시림지역

강원도 최후의 원시림을 간직한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나목(裸木)사이로 하얀 속살을 내비치며 사정없이 불어닥치는 찬 바람을 온 몸으로 받고 있다.

겨울이 온 듯하더니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2월4일)도 지났다. 남녁에서는 벌써 화신(花信)이 손짓하고 있다지만 진동리는 세월의 흐름도 멎은 듯 아직도 겨울의 한가운데 서있다.

내린 눈이 녹기도 전에 또 다시 눈발이 떨어진다. 강아지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밭을 뛰어다니기 바쁘다.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나무에 연걸리듯 주렁주렁 메달려 있다.

진동리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간 눈에 파묻혀 있다.그래서 눈이 내리면 군청에서 치울 때까지는 외부와 연락이 두절돼 생활이 불편하지만 아직도 인심만큼은 후하다.

진동계곡의 원시림은 ‘극상림(생태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를 취하고 있는 삼림)’으로 남한 최고의 생태계 박물관이다.

4천여종의 식물중 20%인 8백여종이 서식하고 있다. 생태 기행의 메카로 손꼽혀 봄철이면 식물학자 ·사진작가 등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러나 겨울로 들어서면 인적없는 산골마을로 남는다.

*** 11월~4월까지 겨울 여섯달

설피밭 산장(033-463-8153)을 운영하는 이이락(41)씨는 5년전 삭막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 터전을 잡은 산사람이다.젊은 시절 산이 좋아 설악산 가야동 계곡에서 7∼8년간 가이드 생활을 하다 지금의 부인 신은숙(36)씨를 만났으며 다원(7)과 우란(6) 두 딸을 두고 있다.

이씨는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을 찾아 강원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어요.그러나 산골이라도 차가 닿는 곳은 분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읍내로 통학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요.그러나 진동2리는 분교가 그대로 남아있어 눌러앉았다”고 말한다.현재 진동2리에는 43가구가 한두집씩 띄엄띄엄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의 바람이 불어 양수발전소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진동리∼서림간 도로포장공사와 서울∼양양간 고속도로가 뚫리는 5년 뒤면 떠나게 될 것 같다고 사람들은 뇌까린다.

갈대가 부러질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분다는 바람부리에서 설피밭 산장을 지나 곰배령으로 이어지는 강선계곡까지의 지역을 설피밭이라 부른다.울창한 원시림과 맑은 물이 속삭이는 오지로 눈이 많이 내려 설피(눈에 빠지지 않게 칡으로 만든 신발)을 신어야 한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 인적 드물어도 인심은 후한곳

진동리는 백두대간 점봉산줄기의 곰배령 ·단목령 ·북암령이 만나 이뤄진 분지다.

설피밭 산장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진동계곡의 한갈래인 강선계곡이 시작되는 삼거리가 나온다. 곰배령까지는 완만한 오솔길로 이어져 있어 천천히 걸어도 왕복 4∼5시간이면 충분하다.점봉산에 오르면 쪽빛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채색된 설악산의 서북주능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떠나는 겨울이 가장 늦게까지 머무는 곳 진동리. 봄기운이 조금씩 피어나는 한편으로 늦겨울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요즈음 여행지로는 최적지다. 현리에서 설피밭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간간이 민박집이 있지만 가장 상류에 있는 설피밭 산장을 이용하는 것이 운치가 더 있을듯 싶다.

7개의 방이 있으며 숙박료는 3만원,식사는 1인분에 5천원이다. 이씨의 부인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백반은 맛깔스런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는 길=서울서 홍천∼인제읍을 지나면 오른편으로 합강교를 건너면서 국도 31호선이 속사로 연결된다. 기린면 현리에서 상남쪽으로 나타나는 현리교전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차를 달리면 오류동 솔밭과 조롱고개를 넘는다.

진동1 ·2교를 지나 두무교를 거치면 바람부리의 넓은 갈대밭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삼거리. 오른편 길은 조침령을 넘어 서림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설피밭으로 연결된다.

글 ·사진=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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